알리는 즐거움/연습으로 쓰는 글 143

어쩌면 당신도

못 생겼다고 비난하지 마라 휘어졌다고 비난하지 마라 쓸모없다고 비난하지 마라 모진 비바람을 참고 견디며 굴곡지고 힘든 세상에 나와 강인하게 버텨온 생명력에 감탄하여 스치는 사람들의 눈길을 끌고 오가는 사람들의 발길을 멈추게 하니까. 괴롭고 힘들었던 날에 대한 보상이랄까 평범하지 않은 것이 흔하지 않은 것이 이제는 더 사랑을 받고 있으니까 어쩌면 당신도 나를 닮아가고 있지 않을까? 어쩌면 당신도 아마 그중의 하나가 아닐까?

설레지 않으면 버려라

설레지 않으면 버려라 헌 옷들도 낡은 책들도 자질구레한 물건들도 설레지 않으면 버려라 풍경 사진들도 다양한 음악들도 여러 동영상들도 설레지 않으면 버려라 안 쓰는 전화번호들도 소원한 사람들도 안 보는 사진첩들도 설레지 않으면 버려라 잊혀져 가는 사랑도 희미해져가는 추억도 아쉬운 미련도 설레지 않으면 버려라 오지 않을 시간을 만나지 못할 사람을 이루지 못할 꿈을

여름답지 않은 여름

하늘을 가로질러 이리저리 날던 잠자리들 나뭇가지 사이에 거미줄을 치던 거미들 시끄럽게 울어대는 매미들 밤 하늘에 다닥다닥 붙은 별들 어렸을 적 여름이면 어디서나 볼 수 있었던 풍경입니다. 하지만 지금은 잠자리도 거미도 매미도 거의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하늘의 별들도 몇 개 보이지 않습니다. 생태계가 파괴되고 토양, 수질, 공기가 오염되고 있는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닙니다. 무더운 여름 아침인데 예전에는 매미 소리에 잠을 깼지만 지금은 자동차 소음 때문에 잠을 깹니다. 아, 옛날이여!

흔적

파란 하늘을 아름답게 만드는 것은 구름이고 구름을 아름답게 만드는 것은 바람이다. 푸른 바다를 아름답게 만드는 것은 바위이고 바위를 아름답게 만드는 것은 파도이다. 자연을 아름답게 만드는 것은 계절이고 계절을 아름답게 만드는 것은 태양이다. 우리 마음을 아름답게 만드는 것은 여행이고 여행을 아름답게 만드는 것은 흔적이다.

죽을 수 있는 용기

난 아픈 것은 참을 수 있는 용기가 있지만 죽고 말겠다는 용기는 없다. 삶이 고달파서 죽어버릴까 생각도 해 봤지만 고통 없이 죽을 수 있는 방법이 없어 무섭다. 일부러 교통사고를 내서 즉사할 수는 있지만 그러다가 죽지 못하고 식물인간이 되면 더 괴롭다. 수면제를 과다 복용하면 고통없이 죽을 수 있다지만 그럴 용기마저 없다. 가만히 있어도 늙고 병들어 죽을 것인데 삶을 조기에 마감하기가 쉽지 않다. 남들은 유서를 남기고 계획적으로 자살을 감행하지만 그런 행위는 용기가 아니라 비겁이다. 난 시장에서 살아 있는 장닭을 사와도 목을 치지 못하는데 하물며 자신의 목숨을 끊는 것은 더더욱 어렵다. 남들은 수많은 고민과 갈등을 하다가 쉽게 죽기도 하지만 난 도저히 하지 못한다. 사랑하는 사람이 먼저 떠나 슬퍼서 죽을..

경계선

수치심! 가지고 싶지 않지만 마음 속 깊은 곳에 자리잡은 너를 버리려고 해도 버리지 못하는 너를 타인 앞에 설 때 꼭 따라오는 너를 혼자 있을 때에 몰래 버리고 싶은 너를 나이가 들수록 오히려 더 나쁘게 변질되는 너를 본성을 감추고 거짓이 드러나게 하는 너를 좋은 것과 나쁜 것을 가리지 못하게 하는 너를 하려는 행동보다 한 행동 때문에 나타나는 너를 고민과 고통를 가져다주는 너를 창피와 치욕을 몰고다니는 너를 부정과 부패를 저지르게 만드는 너를 좌와 벌을 받아야 결국 멀어지는 너를 이제는 못 따라오게 이제는 못 드러나게 뚜렷한 '경계선'을 하나 만들었지 양심과 비양심 사이에 정의와 부정 사이에 말과 행동 사이에 작은 '경계선'을 하나 만들어 놓았지. 빛이 들어와 밝아도 넘지 못하게 누가 안 봐도 넘지 못..

내가 가는 길

내가 가는 길이 믿음이 부족하면 혼자서 걸을 수 없다. 좁고 불편한 길이라도 참고 견디며 걸으며 목적지에 이를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 서야 힘들어도 걷는 희망이 있다. 내가 가는 길이 흔적이 없다면 다른 사람이 걸을 수 없다. 어렵고 힘든 길이라도 헤쳐 나가가며 뚜렷한 표적을 남길 수 있을 것이라는 자신이 있어야 돌아서도 걸은 보람이 있다.

길을 걸으며

같은 길을 자주 걸어도 매번 느낌이 다르다. 혼자 걸을 때 다르고 동행하는 사람과 걷는 것이 다르다. 햇빛이 비칠 때 걷는 것이 다르고 흐린 날 걷는 것이 다르다. 뜨거운 여름철 걷는 것이 다르고 눈 온 날 걷는 것이 다르다. 낮에 걷는 것이 다르고 밤에 걷는 것이 다르다. 같은 길을 자주 걸어도 매번 기분이 다르다. 건강을 위해 걷는 날이 다르고 심심풀이로 걷는 것이 다르다. 자연에 감사하며 걷는 것이 다르고 아무 생각없이 걷는 것이 다르다. 자연의 소리를 들으며 걷는 것이 다르고 음악을 들으며 걷는 것이 다르다. 꽃과 나비를 보며 걸은 날이 다르고 무엇을 보았는지 모르고 걷는 것이 다르다. 같은 길을 자주 걸어도 매번 감정이 다르다. 많은 생각을 하며 걷는 것이 다르고 잡념을 다 버리고 걷는 것이 다..

낙화

떠날 때가 가까와졌음을 아는지 바람마저 숨을 죽인 이 순간 따사로운 햇살이 내려온다. 초봄 며칠간 너와 나의 가슴을 뜨겁게 달구고 더할 나위 없는 기쁨을 안겨주더니 우리들이 이별이 코 앞에 다가온다. 연두색 새싹이 쑤욱쑥 고개를 내밀며 꽃들에게 어서 가라 밀어내는데 우리들의 만남은 여기까지인가 보다. 한 잎 두 잎 떨어지는 꽃비는 내 머리 위에도 내 가슴 속에도 그리움으로 남는다. 이제 가면 그동안 그리움을 걷어내고 아쉬움을 씻어내며 꼬박 1년을 기다려야 한다. 네가 있어서 행복했던 아침 네가 가면서 아쉬웠던 아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