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너를 만났을 때에 난 느꼈지.
세상은 오로지 나를 위해 돌아간다고.
비록 어렸을 적에는 가난했어도
불굴의 오기로 공부를 하여
좋은 학벌에 좋은 직장에
거기에 예쁜 마누라끼지.
난 한손에는 권력을 다른 한손에는 사랑을 쥐었으니
나보다 잘나간다는 사람이 없을 정도였지.
주말이면 내 사랑과 저무는 백사장에서
다정히 손잡고 걸어보기도 했고
푸른 야자수 그늘 아래 앉아
시원한 맥주 한잔으로 목을 축이며
밤하늘의 별을 헤아려도 보고
내 사랑과 함께
시간이 멈추어 주기만을 기대했지.
하지만 새벽이 금방 찾아오고
한주의 일이 시작되면서
난 죽게 일하는 것이
다 내 사랑을 위한 것인줄만 알았지.
때로는 일 때문에
밥 먹듯 야근을 했지만
이게 다 나라를 위하고 가정을 의한 것이라고 생각했었지.
세월이 흐르면서
더 높이 승진하고 더 좋은 대우를 받게 되었으니
이게 그동안의 고생에 대한 보상으로 여겼지.
이렇게 수십년동안
가족도 친구도 사랑도 포기하고
일에 매달리다 정년을 맞고 보니
그게 전부는 아니란 것을 느꼈지.
덩그러니 사회에 나오니까
알아주는 사람이 없었지.
사람은 많은데
친구가 없고
시간은 많은데
할 줄 아는 일이 없었지.
이 나이에 새로운 기술을 배울 수도 없고
고민 고민하다가
부모가 물러준 한 뙈기 땅을 찾아
고향을 찾았지.
텃밭을 열심히 가꾼다고
따가운 햇살과 씨름하며
야채를 가꾸어 보았지.
그런데 동네 시골 할머니가 가꾸는 채소밭은
잎이 싱싱하고 큰데
내 텃밭은 물을 열심히 줘도 안 되길래
어서 크라고 비료를 한 줌씩 놓았지.
아뿔싸
채소는 점점 시들어가고
결국 농사를 망치고 말았지.
제대로 알지도 못하는 무식한 양반이라
차라리 그 돈이면
돈 주고 사다 먹는 것이 낫겠다고
핀잔 주는 아내의 말에
그래
난 이제 아무 것도 모르는 백치임을 시인했지.
하지만 어쩌겠어?
뙤약볕 아래서 절대로 농사를 안 짓겠다고
책과 씨름하였던 나인데
한때는 잘 나갔지만
퇴임을 하고 나니 후회가 막심한 것을 어쩌겠어.
바쁘다는 핑계로 고향도 안 찾고
부모님 일손도 안 도와 드렸는지 후회해도
용서해 줄 부모님이 계시나
아니면 친척들이 계시나?
내 손에 흙 묻힐 일은 절대로 없을 것이라던
옛 생각이 왜 어리석었는지
이제는 알게 되었어.
어차피 죽으면 흙으로 돌아가는 것이 인생인데
이제 와서 후회한들 무엇하나?
그저 꼬리 내리고
마누라가 시키는대로 복종할 수밖에.
목 말라 막걸리 한병 사는 것도
마누라 눈치를 봐야 할 판인데.
도시에 사는 자식들은
이 내 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래도 어쩌다 찾아올 손자에게
쥐어줄 용돈이라도 있어야 할텐데.
이럴 줄 알았으면 비자금이라도 김춰둘 것을.
어쩌다 바둑판 한수 한수를
잘못 두었나?
이렇게 될 줄이야?
이럴 수가?
오늘도 날은 벌써 저물고
이 긴 밤을
또 뭐하면서 보나야 하나?
시간은 거꾸로 돌릴 수 없나?
그때가 좋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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