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리는 즐거움/연습으로 쓰는 글

치욕의 12.12. 아침에

옥상별빛 2017. 12. 12. 05:03

 

민주주의가 뿌리내리는 데에는 많은 희생과 댓가를 치러야 합니다.

 

민주주의가 없이는 진정한 자유도 평화도 없습니다.

 

1인 독재를 하는 많은 아프리카나 1인 독재를 하는 중국이라 북한은 공산당의 부패가 심하여 언젠가는 궤멸합니다.

 

우리나라도 지난 1970년대말 박정희 대통령이 서거하자 그 틈을 노린 군부의 반란이 있었는데 오늘이 바로 12.12 사태를 일으킨 그 날입니다.

 

1979년 12월 12일 전두환·노태우 등이 이끌던 군부 내 사조직인 '하나회' 중심의 신군부세력이 육군참모총장이자 계엄사령관인 정승화를 연행하였습니다.

 

10·26사건이 일어나 합동수사본부장을 맡고 있던 보안사령관 전두환은 육군참모총장이자 계엄사령관인 정승화만 잡으면 될 것으로 판단하고 11월 중순 국방부 군수차관보 유학성, 1군단장 황영시, 수도군단장 차규헌, 9사단장 노태우 등과 함께 12월 12일을 거사일로 결정하였습니다.

 

12월 12일 저녁이 되자 보안사 수사관과 수도경비사령부 33헌병대 병력 50명은 한남동 육군참모총장 공관에 난입하여 경비원들에게 총격을 가하여 제압한 후 정승화를 보안사 서빙고 분실로 강제 연행하였습니다.

 

군사반란을 주도한 자들은 주요 인물들을 연희동 요정으로 유인하고 연회 도중 총장의 연행 사실을 전하여 육군장성들이 대응태세를 갖추려 하질 각본대로 전두환 일행은 국방부와 육군본부를 무력화시켜 놓은 상태였습니다.

 

당시 최규하 대통령에게 압력을 가하여 총장연행 재가를 요청하였으나 거절당하자 국방장관 노재현을 통하여 대통령이 총장연행을 재가를 얻고 13일 새벽 정승화를 연행하였습니다.

 

이 사태를 성사시킨 신군부의 주도세력인 전두환과 노태우는 대통령이 되어 군사정권을 이어갔고 그들의 행위도 정당화되었습니다.

 

하지만 노태우 대통령 당시인 1987년 6월 10일부터 6월 29일까지 대한민국 전국에서 일어난 반독재, 민주화 시위가 일어났습니다.

 

대통령 선거인단이 대통령을 뽑는 간접선거를 골자로 한 기존 헌법에 대한 대통령 전두환의 호헌 조치와, 경찰의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시위 도중 이한열이 최루탄에 맞아 사망한 사건 등이 도화선이 되어 6월 10일 이후 전국적인 시위가 발생하였고, 이에 6월 29일 노태우의 수습안 발표로 대통령직선제로의 개헌이 이루어졌습니다.

 

이에 전두환과 노태우로 이어진 군사 정권은 물러나고 문민 정부인 김영삼정부가 들어서면서 12.12 사태를 하극상에 의한 쿠데타적 사건이라고 규정하였습니다.

 

맢으로 2년 뒤면 어느새 12.12 사태도 40주년을 맞이하지만 우리는 너무 쉽게 아픈 역사를 잊는 듯합니다.

 

수많은 사람들의 희생으로 지켜온 풀뿌리 민주주의가 정착되도록 정치가 선진화되고 부정과 부패를 몰아내고 노사간의 갈등이 없는 행복한 미래를 만들어가야 합니다.

 

 

* 사진 출처 : 네이버

'알리는 즐거움 > 연습으로 쓰는 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새해 정부에 거는 기대는?  (0) 2018.01.02
그때가 좋았지?  (0) 2017.12.20
명태의 변신  (0) 2017.12.11
안전을 챙기는 정부라야 합니다  (0) 2017.12.01
좌절은 없어야  (0) 2017.11.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