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리는 즐거움/가슴으로 읽는 글

생명을 존중한 조상

옥상별빛 2022. 2. 10. 08:57

우리 조상들은 작은 벌레의 생명조차도 가볍게 여기지 않았습니다.

뜨거운 개숫물을 마당에 버릴 때에는 이렇게 외쳤습니다.

“워이 워이!”

물이 뜨거워 벌레들이 다칠 수 있으니 어서 피하라고 소리친 것입니다.

봄에 먼 길을 떠날 때에는 오합혜(五合鞋)와 십합혜(十合鞋), 두 종류의 짚신을 봇짐에 넣고 다녔습니다.

십합혜는 씨줄 열 개로 촘촘하게 짠 짚신이고 오합혜는 다섯 개의 씨줄로 엉성하게 짠 짚신을 가리킵니다.

행인들은 마을길을 걸을 땐 십합혜를 신고 걷다 산길이 나오면 오합혜로 바꾸어 신곤 했습니다.

벌레가 알을 까고 나오는 봄철에 벌레들이 깔려 죽지 않도록 듬성듬성 엮은 짚신을 신은 것입니다.

오합혜는 십합혜보다 신발의 수명이 짧았으나 그 만큼 벌레의 수명은 늘어났습니다.

농부들은 동물의 끼니까지 살뜰히 챙겼습니다.

콩을 심을 때엔 세 알씩 심었습니다.

한 알은 땅 속에 있는 벌레의 몫으로, 또 하나는 새와 짐승의 몫으로, 마지막 하나는 사람의 몫으로 생각했습리다.

감나무 꼭대기에 ‘까치밥’을 남겨놓고, 들녘에서 음식을 먹을 때에도 "고수레" 하면서 풀벌레들에게 음식을 던져주었습니다.

이러한 미덕(美德)은 우리의 식문화에도 그대로 배어났습니다.

여인들은 3덕(三德)이라고 해서 식구 수에 세 명의 몫을 더해 밥을 짓는 것을 부덕(婦德)으로 여겼습니다.

걸인이나 가난한 이웃이 먹을 수 있도록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미국 여류소설가 펄 벅은 장편소설 ‘살아 있는 갈대’에서 한국을 ‘고상한 사람들이 사는 보석 같은 나라’로 표현했습니다.

그녀의 극찬은 한국에서 겪었던 특별한 체험 때문이었습니다.

1960년 펄 벅이 소설을 구상하기 위해 한국을 찾았습니다.

여사는 늦가을에 군용 지프를 개조한 차를 타고 경주를 향해 달렸습니다.

노랗게 물든 들판에선 농부들이 추수하느라 바쁜 일손을 놀리고 있었습니다.

차가 경주 안강 부근을 지날 무렵, 볏가리를 가득 실은 소달구지가 보였습니다.

그 옆에는 지게에 볏짐을 짊어진 농부가 소와 함께 걸어가고 있었습니다.

여사는 차에서 내려 신기한 장면을 카메라에 담았습니다.

여사가 길을 안내하는 통역에게 물었습니다.

“아니, 저 농부는 왜 힘들게 볏단을 지고 갑니까? 달구지에 싣고 가면 되잖아요?”

“소가 너무 힘들까 봐 농부가 짐을 나누어 지는 것입니다. 우리나라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지요.”

여사는 그때의 충격을 글로 옮겼습니다.

“이제 한국의 나머지 다른 것은 더 보지 않아도 알겠다.

볏가리 짐을 지고 가는 저 농부의 마음이 바로 한국인의 마음이자, 오늘 인류가 되찾아야 할 인간의 원초적인 마음입니다.

내 조국, 내 고향, 미국의 농부라먼 저렇게 힘들게 짐을 나누어 지지 않고, 온 가족이 달구지 위에 올라타고 채찍질하면서 노래를 부르며 갔을 것입니다.

그런데 한국의 농부는 짐승과도 짐을 나누어 지고 한 식구처럼 살아가지 않는가.”

구한말 개화기에 한 선교사가 자동차를 몰고 시골길을 가고 있었습니다.

그는 커다란 짐을 머리에 이고 가는 할머니를 보고 차에 태워드렸습니다.

저절로 바퀴가 굴러가는 신기한 집에 올라탄 할머니는 눈이 휘둥그레졌습니다.

뒷자리에 앉은 할머니는 짐을 머리에 계속 이고 있었습니다.

“할머니, 이제 그만 내려놓으시지요?"

선교사의 말에 할머니는 순박한 웃음을 지으며 대답했습니다.

“아이고, 늙은이를 태워준 것만 해도 고마운데, 어떻게 염치없이 짐까지 태워달라고 할 수 있겠소?”

차를 얻어 타고서 차마 머리에 인 짐을 내려놓지 못하는 선한 마음이 우리의 모습이었습니다.

이어령 장관의 부친은 6·25의 피난 때에도 남의 밭을 밟지 않으려고 먼 길을 돌아왔다고 합니다.

그 때문에 가족들이 오랫동안 가슴을 졸이며 아버지를 기다려야 했습니다.

백의민족의 가슴에는 이런 선한 피가 흐릅니다.

선한 마음은 적장의 전의까지 빼앗아버리는 힘이 있습니다. 임진왜란이 일어난 1592년 봄 ‘사야가(沙也加)’라는 스물 두 살의 일본 장수가 조선 땅을 침략했습니다.

가토 기요마사의 우선봉장인 그는 부하들을 이끌고 진격하다 피난을 떠나는 농부 가족을 보았습니다.

왜군들이 총을 쏘는 와중에도 농부는 늙은 어머니를 등에 업고 아이들과 함께 산길을 오르고 있었습니다.

젊은 장수는 자기보다 노모의 목숨을 더 중히 여기는 농부의 모습을 보자 심장이 쿵 하고 내려앉았습니다.

칼날처럼 번뜩이던 살기는 한 백성의 지극한 효심에 순식간에 녹아내리고 말았습니다.

“도덕을 숭상하는 나라를 어찌 짓밟을 수 있단 말인가!”

왜장 사야가는 그날 뜬 눈으로 밤을 새웠습니다.

착한 백성들을 죽이는 전쟁은 불의라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마침내 사야가는 부하 500여명과 함께 조선에 투항하기로 결심했습니다.

승전을 거듭하던 침략군이 '인의(仁義)'를 이유로 힘없는 나라에 집단 망명한 사례는 세계사에 전무후무한 일입니다.

조선에 투항한 사야가와 그의 병사들은 자신의 동료인 왜군들을 향해 총을 쏘았습니다.

그가 바로 김충선입니다.

*내용 출처: 노현승의 페이스북
*사진 출처: 네이버

'알리는 즐거움 > 가슴으로 읽는 글' 카테고리의 다른 글

미래의 인성교육  (0) 2022.07.10
중퇴율을 격감시킨 여교장  (0) 2022.03.03
크리스타 로드리게스  (0) 2022.01.30
테리 폭스  (0) 2022.01.17
헨리 키신저의 공부법  (0) 2022.01.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