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한마디가 천냥 빚을 갚는다'라는 속담이 있는 인성은 실력이다.
사회가 아무리 급격하게 발전해도 학생들에게 인성교육이 중요하다고 모두 동의하는 것 같다.
인성교육을 말하자면 대한민국 교육법 제1조에 “교육은 홍익인간의 이념 아래 모든 국민으로 하여금 인격을 완성"이라고 인성과 관련된 목적이 명시되어 있다.
그렇지만 안타깝게도 학교에서는 국·영·수 · 사과 등 교과목 교육이 우선이며 인성교육은 뒷전으로 밀려나고 있다.
우리나라 학생들은 읽기, 수학, 과학의 국제학업성취도평가에서 수년간 상위권을 차지하고 있지만 인성과 관련된 지표, 즉 사회성이나 협력 능력 등은 최하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만큼 학교에서는 교과목에 투자한 반면 인성교육은 소홀했기 때문에 나타난 당연한 결과이다.
가정에서도 아이들을 '공부벌레'처럼 키우는데 급급하여 '개처럼 공부해야 정승된다'고 아우성이다.
부모에 반항하는 아이, 부모를 죽이는 패륜아 뉴스가 우리를 슬프게 한다.
학교 폭력과 학교 중퇴 등 문제도 심각하다.
이런 상황에서 2016년도에 세계 최초의 인성교육진흥법이 제정되었지만 크게 변화된 것은 감지하지 못하고 있다.
인성교육진흥법에 인성교육은 “자신의 내면을 바르고 건전하게 가꾸고 타인, 공동체,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데 필요한 인간다운 성품과 역량을 기르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교육”이라고 명시되어 있다.
세부 개념으로 예, 효, 정직, 책임, 존중, 배려, 소통, 협동, 공감하고 소통하는 능력과 갈등을 해결하는 능력 등을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요소를 품성 차원만이 아니라 제4차 산업혁명 시대에 경쟁력을 갖추기 위한 최고의 실력 또는 역량으로 연결되어야 할 것이다.
"인성교육은 산업혁명 시대가 요구하는 실력이다"
제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의사와 변호사 같은 고급 일자리마저 인공지능을 탑재한 로봇에게 빼앗기기 시작했다.
즉 지식과 정보를 암기하고 연산하는 능력이 위주인 직업은 로봇이 인간을 대체할 수 있다.
만약에 학교가 계속해서 암기력과 연산력을 중시한다면 졸업생들은 더 심한 취업난에 허덕이게 될 것이다.
그럼 우리는 학생들이 어떤 능력을 갖추도록 도와야 할까?
인공지능이 감히 넘볼 수 없는 능력은 무엇일까?
"인공지능이 주도하는 제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창의적 인재를 키우는 나라가 리더이며, 지성과 감정을 결합한 융합형 인재가 미래를 이끈다."라고 한다.
특히 SES(Socioemotional Skills, 사회·정서적 역량) 가 인재 양성의 해법으로 제시되었다.
그렇다면 어떻게 창의성과 사회 · 정서적 역량이 서로 관련되었을까?
여기에 창의성에 대한 명확한 이해가 필요하다.
창의성의 6가지 기본과 정서적 요소를 크게 6가지 요소로 요약할 수 있다.
튼튼한 기초 지식, 알쏭달쏭한 상황을 헤쳐 나갈 수 있는 퍼지 사고력, 문제 해결 대신 문제를 제기할 수 있는 호기심, 새로움을 수용할 수 있는 여유, 안락함에 만족하지 않고 낮은 성공률에 도전할 수 있는
모험심, 그리고 실패하더라도 다시 일어설 수 있는 긍정적 자세 등이다.
암기력은 남의 것, 헌 것을 자기 머릿속에 담는 소비적 활동이라면 창의성은 자기 것, 새것을 자기 머릿속에서 만들어 내는 생산적 활동이다.
창의성에는 독창성이 필수이지만 경제활동이 되기 위해서는마켓과 소비자 등을 고려한 사회적 적절성이 동반되어야 한다.
'세상에 둘도 없는 생각’과 더불어 '세상을 둘러보는 생각'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그리하여 의도적으로 기존 체제와 틀에서 벗어나는 행위다.
여기에는 위험을 무릅쓰는 모험심이 따른다.
모험이란 예측불허한 사항에 도전하는 것이니 실수와 실패의 부담이 따른다. 실패했다고 주저앉고 포기하고 좌절한다면 결국 절망만 남게 된다.
하지만 실패에 굴복하지 않고 희망을 품고 또다시 도전할 때에 성공할 수 있다.
이러한 오뚝이같이 다시 일어설 수 있는 능력을 탄력성 또는 긍정심이라 한다.
6가지 중에 기초 지식과 사고력은 인지적 요인이지만 나머지 네 가지인 허심, 호기심, 모험심, 긍정심은 정의적 심적 요인이다.
정의적 영역은 감정의 세계이다.
감정이 창의성에 깊숙이 개입되어 있는 것이다.
아인슈타인도 진정한 예술과 모든 과학의 원천이 바로 감정이라고 했다.
그러니 창의성이 중요한 제4차 산업혁명 시대의 인재는 정서적 능력을 갖추어야 한다는 것이다.
제4차 산업혁명 시대의 인재는 사회성도 갖추어야 한다.
개개인의 창의성만큼 중요한 게 집단지성이기 때문이다.
흔히 창의성의 텃밭인 융합을 기술과 인문학을 합친 합학문 학문이라고 하면서 한국에서는 문과 이과를 통폐합하고 학생들이 각자 여러 학문을 두루 섭렵하게 하려고 한다.
그러나 융합은 다양한 영역의 지식과 재능을 지닌 사람들이 함께 어울려 이루어 내는 집단지성을 뜻한다.
집단지성은 다른 생각 패턴을 가진 사람들이 협업할 때 기대할 수 있다.
그러나 아쉽게도 집단은 인간관계로 이루어졌으며, 모든 인간관계에 갈등이 존재한다.
그래서 집단지성을 발휘하려면 관계를 조율해 나가는 능력이 중요하다.
남과 더불어 일을 하기 위해서 갈등 관리, 소통, 신뢰, 배려 등 사려 깊은 행동이 필요하다.
우리의 행동은 생각으로 작동하기도 하지만 감정에 지배받기도 한다.
각자 따로 작동할 때에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예를 들어 감정이 동반되지 않는 즉 마음에 없는 가식, 허위, 거짓 행동이 있는 반면에 생각없이 감정 때문에 '욱'하며 나중에 후회되는 미성숙한 행동도 있다.
그러니 사려 깊은 행동은 생각과 감정, 즉 논리와 심리가 합쳐진 합리적 행동력이다.
이성과 감성이 융합된 상태가 인성이다.
결론적으로 제4차 산업혁명 시대에 필요한 창의적 인재는 사회·정서적 역량을 갖춘 사람이다.
인성을 지닌 사람이 진정으로 실력이 있는 사람'인 것이다.
■ 인성교육의 전제
○안다고 행동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인성이란 실력을 어떻게 갖추어 주어야 하는가.
한국 학생들의 사회성과 협력성은 세계 최하위 수준이지만 도덕에 대한 지식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즉 책으로 공부해서 무엇이 옳고 옳지 않은지를 아는
것은 세계 최고지만 행동이 따라주지 않는다는 게 문제다.
인성교육으로 인하여 학생들이 아무리 옳은 생각과 좋은 의도를 가지고 있다 해도 행동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면 가치가 없다.
인성이란 바람직한 생각도, 바람직한 의도도 아닌 바르게 살아가는 행동이다.
따라서 인성교육은 단지 학생들에게 무엇이 옳고 그른가를 가르치는 강의로 끝나지 말아야 한다.
아이들의 행동을 이끌어 낼 수 있는 실습과 체험 위주 교육이 필요하다.
○ 요구한다고 행동이 나오지 않는다
미국은 1980년대부터 강력한 인성교육을 시작했고 전략은 크게 네가지였다.
여론을 움직일 수 있는 슬로건과 캠페인을 벌이고, 보상과 처벌로 인성을 강화하는 방법을 쓰고, 반복적인 훈련을 실시하고, 엄격한 규칙과 퇴학 등을 정해 인성을 훈련하기도 했다.
그러나 2010년에 미 연방정부가 대규모 연구를 실시한 결과, 미국의 인성교육은 총체적으로 실패한 것으로 입증되었다.
학생들의 문제 행동을 예방하는 데 효과가 없었고 학업 성취도를 향상하는 데도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미국이 사용한 네 가지 인성교육 방법에 공통점이 있다.
넷 다 상과 벌로 인간을 다스리려는 행동주의적 철학에 기반을 둔 방법들이라는 점이다.
연구로부터 얻은 결론은 바람직한 행동을 요구한다고 학생들이 실천하는 게 아니라는 점이다.
○ 감정을 움직여야 한다
인성과 인성교육은 꽃과 꽃 가꾸기에 비유할 수 있다.
인성이 우리 모두 원하는 꽃이고, 꽃을 피우기 위한 물을 주고 거름주기가 인성교육이다.
그렇다면 인성이라는 꽃을 피우기 위해서 인성교육의 물과 거름은 어디에 뿌려야 할까?
사람에게 허리를 90도 숙여 인사하더라도 마음속으로 상대방에게 욕하고 있다면 인성을 갖춘 행동이라고 할 수 없듯이 상대방에 대한 존중, 호감, 배려, 감사함 등 긍정적 감정이 동반되어야 한다. 문제 행동에도 분노, 슬픔, 증오, 절망 등 부정적 감정이 작동한다.
이렇듯 감정은 생각보다 훨씬 더 위력적으로 행동을 지배한다.
즉 인성교육에는 행동이 아니라 그 저변에 있는 감정을 움직이는 방법이 동원되어야 한다.
○인성교육 활성화를 위해서는 세 가지 조율 능력을 갖추는 일이다
집단지성을 발휘하려면 나와 매우 다른 비전과 가치관을 지닌 사람들과 더불어 일을 할 수 있는 관계 조율 능력이 필요하다.
비전 공유, 갈등 관리, 소통, 배려, 감사, 존중 등 관계를 잘 조율하기 위해서는 우리는 각자 동물적인 본능인 이기심과 공격성, 성적 충동 등 감정을 통제할 수 있어야 한다.
원초적 불안감과 공포감을 스스로 관리할 수 있는 감정 조절력도 발휘해야 한다.
각종 욕구와 욕정을 잠시나마 자제하거나 미룰 수 있어야 한다.
즉 자기 조율을 할 수 있어야한다.
자신을 뛰어넘고 삶의 의미를 보다 큰 것에서 찾는 것이 공익 조율이다.
오로지 나만을 위해 꿈을 추구하고 끼를 부리며 윈-루즈식의 경쟁을 일삼으면 결국 모두가 불행해진다.
반면 남을 위해서 자신을 희생하는 것 역시 윈 - 루즈 이분법에서 벗어나지 못한 발상이다.
서로 약간 양보하는 타협은 양보를 얻어낸 부분보다 양보해 준 부분이 자꾸 아쉽게 느껴지기에 장기적 해결책이 되지 않는다.
각자 국지적으로, 단기적 안목으로 사익을 추구하기보다는 자신보다 더 큰 공동체의 이익을 고려하고, 공동체의 이익이 결국 자신의 이익이 된다는 사실을 깨닫고, 소위 '통큰' 계산을 하는 것이 공익 조율이다.
공익과 사익 사이에서 갈등하는 게 아니라 둘을 하나로 인식하는 능력이다.
좀 더 멀리 그리고 넓게 보는 글로벌한 비전을 갖추는 것이며, 모두 다 함께 잘살 수 있는 윈-윈 결과를 내다보는 창의적인 비전을 지니는 것이다.
학생들이 세 가지 조율 능력을 갖출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인성교육의 구체적인 목표가 되어야 한다.
조율 능력은 구체적인 기술이기 때문에 가르칠 수 있고 측정하고 평가할 수 있다.
인성교육진흥법에 명시된 자신의 '내면을 바르고 건전하게 가꾸는 것'은 자기 조율이고, '타인과 더불어 살아가는 것'은 관계 조율이고, '공동체와 자연과 더
불어 살아가는 것'은 공익 조율이다.
따라서 인성교육의 목적은 이 세 가지 조율을 제대로 할 수 있는 사람을 길러 내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 인성교육은 추가되는 교육이 아니어야 한다
인성교육은 기존 교과과정에 추가되는 교육으로 실행되어서는 승산이 없다.
인성교육이 특별 수업이나 방과 후 활동으로 간주되는 게 아니라 모든 수업 시간에 일상적으로 녹아 들어가야 한다.
그래야 역설적으로 특별 활동과 행정 업무에 따른 교사의 부담이 줄어들 것이다.
인성교육을 기존 수업에 녹여 내는 것은 마치 물이 가득 찬 컵에 소금이나 설탕을 한 숟가락 넣는 것과 같다.
물의 부피는 거의 달라지지 않지만 맛은 매우 달라진다.
즉 일상화된 인성교육은 교육의 양은 같아도 교육의 질은 달라지게 하는 것이다.
인성교육은 어린이를 사려 깊은 행동을 하는 성숙한 어른으로 만드는 교육이다.
교사가 전달해야 할 것은 지식에 앞서 지혜다.
지식은 책과 인터넷에서 언제든지 얻을 만큼 얻을 수 있지만, 지혜는 오로지 사람에서 사람으로 전해진다.
먼저 어른이 된 사람이 그 어른스러운 모습을 아이에게 보여 주는 것이다.
먼저 살아서 어른 된 사람을 선생이라고 한다.
부모, 교사가 선생이고, 아이에게 그 어른스러운 모습을 보여 주는 스승이다. 그래서 인성교육은 우리 사회에 사라지고 있는 스승이라는 단어를 되찾기 위한 방법이기도 하다.
○ 인성교육은 교육 혁신의 핵심이어야 한다
현재 학업 중단 청소년들과 학교 부적응 학생들이 급증하고 있으며 이들 중에서 일부는 훗날 관심 병사가 되고 인성을 갖추지 못한 사회 부적응 시민이 될 것이다.
동시에 사회는 졸업생들의 능력에 대한 불만이 매우 높다.
그래서 정부는 인성교육진흥법과 영재교육진흥법을 비롯하여 자유학기, 통합교과, 선행학습 폐지, 자율학습 금지, 폭력 예방, 금연, 특목고, Wee, 대안학교 등 크고 작은 수백 가지 다양한 프로그램과 사업을 실행하고 있다. 그럼에도 재학생의 문제 행동과 졸업생의 실력에 대한 불만은 매해 증가하고 있다.
이제 교육에도 지동설에 버금가는 혁신이 필요하다.
인지적 축에 초점을 맞춘 기존 교육제도를 유지한 채 계속해서 보완 프로그램을 추가해서는 효과가 없을 것이다.
교육제도에 정의적 축을 추가해야 한다.
이성과 논리를 관리하는 인지적 축과 더불어 감성과 심리를 관리하는 정의적 축을 포함해야 한다.
세계적으로 교육 대중화가 시작되던 1900년 초에 개발된 인지능력 평가지표인 IQ와 사람을 상과 별로 다스리는 행동주의적 교육 철학이 지난 100년간 교육계를 지배해 왔다.
하지만 2000년도 전후로 정서 지능과 긍정 심리에 대한 연구 결과물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EQ와 정서 기반 학설들이 아마도 앞으로 100년을 지배할 것이다. 교육의 백년지계란 이런 큰 흐름에 맞춘다는 뜻으로 이해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내용 출처: 제4차 산업혁명 시대 대한민국 미래교육 보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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