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리는 즐거움/가슴으로 읽는 글

헨리 키신저의 공부법

옥상별빛 2022. 1. 17. 16:45


헨리 키신저(Henry Kissinger)는 유대계 미국 정치가로 1939년 미국으로 망명해 하버드 대학교 교수를 지냈으며, 대통령보좌관
겸 미국국가안전보장회의 사무국장과 국무장관을 역임했습니다.

미국과 중국의 관계 개선, 소련과의 긴장 완화, 중동 전쟁 조정, 베트남 전쟁에서의 미군 철수 등에 힘썼습니다.

세계 평화를 증진시킨 공을 인정받아 1973년 노벨평화상을 수상하였습니다.

별볼일 없는 학창시절을 보냈음에도 훗날 탁월한 능력을 발휘한 인물로 꼽을 수 있는 또 한 사람이 냉전 시대의 세계 안보문제를 담당했던 헨리 키신저입니다.

1973년도에 노벨평화상을 받은 미국의 정치학자
헨리 키신저는 1923년 5월 27일 독일 바이에른 주 퓌르트에서 태어났습니다.

유대인이었던 그의 가족은 나치의 압박을 피해 미국으로 망명했습니다.

뉴욕으로 이주한 뒤 원래 독일식 이름인 하인츠 일프레드 키싱어에서 하인츠를 헨리로 바꾸고 키싱어도 미국식 발음인 기신저로 바꿔 불렀습니다.

축구는 좋아, 하지만 공부는 싫어 퓌르트에서 김나지움 선생님이었던 아버지는 1933년 나치에 의해 강제
로 퇴직당했습니다.

가족의 미래가 불투명한 나락으로 떨어지던 그 시절,
본인의 말에 따르면 어린 하인츠 키싱어는 오직 축구에만 관심이 있는 철부지 소년이었습니다.

학교성적은 그저 중간 정도, 체육에서는 물론 좋
은 성적을 받았지만 당시 외국어였던 영어는 그에게 특히 어려운 과목이었습니다.

퓌르트에서 마지막으로 받은 1938년 4월 12일자 성적증명서에는 다음과 같이 씌어 있습니다.

“학생 하인츠 키싱어는 1933년 5월 2일 사립 유대인 퓌르트 실업학교에 입학했다. (…) 1937/38학년도 5학년 수료시험을 치러 합격했다.”

그는 물리와 화학에서는 '우'를 받았고 전체 성적은 '미'를 받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그런데 미국으로 건너간 뒤 소년 키신저의 학교성적은 해마다 몰라보게 향상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1954년, 하버드 대학교에서 역사학으로박사학위를 받았습니다.

독일에서 공부하던 시절 보통 수준 이상을 넘어서지 못하던 그가 이토록 공부를 열심히 하게 된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요?

그건 바로 이주민의 자의식이 작동했기 때문입니다.

제2의 고국인 미국에서 제대로 정착해 살기 위해서는 이전까지의 나태함을 극복해야 한다는 것. 무엇보다 학교성적에 따라 사회적 성공 가능성이 달라지는 미국의 특성을 그는 냉정하게 이해했습니다.

그리하여 한때 난공불락처럼 여겨지던 영어를 완벽
한 자신의 모국어로 습득해냈고, 미국은 물론 현대 세계의 지형을 좌우하는 거물 정치가로 성장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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