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생명을 위협하는 플라스틱이 다른 동물의 위장에서도 발견되고 있다는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닙니다.
남극의 빙하 주변에서 헤엄치던 고래에서부터 북쪽 초원의 나라 몽고 초원에서 풀을 뜯던 양에 이르기까지 미세 플라스틱이 모든 생물을 위협하고 있습니다.
몽골에서는 이미 1990년대부터 고도 성장기에 접어든 중국이 대량으로 버려지는 플라스틱 제품을 값싸게 처분하려고 내몽고의 목축지대로 반입되어 쌓이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몽골 정부는 유목민들이 키우는 양과 소떼보다 경제성장이 우선이었기 때문에 중국으로부터 쓰레기를 사들여 널따란 초원에 매장(?)이 아닌 방치를 허용하고 말았습니다.
이리하여 몇 년 동안 플라스틱 제품은 하얗게 변색되고 태양광을 받아 반사되면서 작게 분해되어 몽골 초원에 흩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이듬해 봄이 오고 풀이 무성해지면 아무것도 모르는 몽골의 양이나 소들은 초원의 풀을 뜯는데 풀잎에 묻은 미세 플라스틱까지 먹고 있습니다.
가축의 몸 속으로 이동된 미세 플라스틱은 소화되지 않은 채 몇 년 동안 몸에 들어와도 배설되지 못하고 쌓이기 시작했고 어떤 가축은 몸이 점점 약해져 죽어갔습니다.
양과 소가 죽지 않았더라도 인간은 양과 소로부터 제공되는 유제품과 고기를 통해 가축이 먹은 플라스틱을 섭취하고 있습니다.
즉 플라스틱이 환경을 파괴함은 물론 가축을 매개로 하여 인간의 몸에 축적되고 있습니다.
유라시아의 초원지대에서의 플라스틱 문제에 우리가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는 것은 미세 플라스틱 먼지가 겨울철에 우리나라와 일본을 위협하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몽골 유목민들은 미세 플라스틱에 대한 관심이 적고 모든 만물은 가만히 두어도 자연으로 돌아간다며 방치하는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국제사회의 관심을 이끌어 내는 것도 미미한 이유는 아직까지도 몽골의 앙과 소같은 가축에 축적되는 미세 플라스틱이 고래처럼 이동이 극히 제한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미국이나 유럽의 환경보호단체들은 남극에서 북극으로, 태평양에서 대서양까지 가지 않는 곳이 없는 고래떼뿐에 관심을 두지 몽골의 가축에는 큰 관심을 두지 않는 것 같습니다.
몽골이라는 나라를 떠올릴 때 인간의 떼가 덜 묻은 초원의 나라라고 생각하는 것은 대단한 착각입니다.
"저 푸른 초원 위에 그림같은 집을 짓고
사랑하는 우리 님과 한백년 살고 싶네."
가수 남진씨가 1970년대에 노래한 것처럼 그런 초원을 이제는 몽골에서조차 찾아보기 힘든 세상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이제 걱정을 해야 하는 나라는 대한민국과 일본뿐입니다.
이제 더 늦기 전에 우리나라와 일본 정부가 나서서 몽골의 쓰레기 처리 문제에 객입을 하고 과학적인 처리 시설을 지원해 주어야 할 때가 온 것 같습니다.
*사진 출처: 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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