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리는 즐거움/연습으로 쓰는 글

마지막 여정을 앞두고

옥상별빛 2017. 5. 13. 17:32

 

 

우리는 이제 다 자라 출가를 하는 성인처럼

바람이 불면 떠날 것입니다.

 

한 어머니 밑에서 오손도손 사이좋게 살다가

어디로 떠날지 어떻게 살아갈지도 모르는 채

한줄기 바람이라도 불면 여행할 것입니다.

 

어떤 씨앗은 양지의 토양에서

새들의 노랫소리를 들이며 무럭무럭 자라다가

꽃도 피워보지 못하고

사람들의 밥상에 올라 생을 마칠 것이고

 

어떤 씨앗은 길가의 한 모퉁이에서

혹시 사람의 발에 밟힐세라 자나깨나 떨며 자라다가

결국은 조상처럼

동그란 홀씨주머니를 만들 것이고

 

그리고 또 어떤 씨앗은

투명한 유리 구슬 안에 깆히었다가

화려한 목걸이로 변신하여

영원히 죽지 않는 불사신이 될 것입니다.

 

 

형제여 자매여

우리가 이 다음에 어디서 무엇이 되든

운명은 다 하늘에 맡길 수밖에...

 

그러나

봄날의 어느날 초저녁 헤어지기 전에

우리는

설레임과 두려움이 교차하는 가운데

바람에 몸을 맡기고 떠나야만 했던 그 순간까지는

너무너무 행복했었음을 오래 기억할 것입니다.

'알리는 즐거움 > 연습으로 쓰는 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아이들아  (0) 2017.08.14
아이를 어떻게 키울까요?  (0) 2017.07.25
6.25 아침에 부쳐  (0) 2017.06.25
처음으로 찾은 외조부 묘소  (0) 2017.05.06
기다림  (0) 2017.04.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