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러내는 즐거움/안타까워라

월드컵 4강 주역 유상철을 추모하며

옥상별빛 2021. 6. 8. 04:46

지난 2002 한일 월드컵 폴란드와의 조별리그 첫 경기 때 황선홍 선수의 첫 골에 이어

유상철 선수의 중거리 슛은 16강 진출을 예고하는 골이었습니다.

 

우리 월드컵 선수들은 자신감을 얻고 미국과는 1대 1로 비겼지만

조별리그 최종전인 포르투갈전에서 1-0으로 승리하면서

당당히 2승1무로 16강 진출에 성공했습니다.

 

이후 16강전에서 이탈리아를  

8강전에서 스페인마저 따돌리고 아시아 최초로

월드컵 4강 신화를 이뤘는데 그 뒤에는 유상철 선수 당신이 있었습니다.

 

키 183㎝의 탄탄한 체구에 강력한 체력을 지닌 필드 플레이어였던 당신은

골 감각과 헤딩, 수비 능력 등을 두루 갖춘 간팡 스타였습니다.


1998 프랑스 월드컵 때에는

벨기에와의 조별리그 3차전 동점골을 넣었고

그해 K리그 득점왕(15골)을 차지하더니

프로 첫해 수비수로 K리그 시즌 베스트 11에 선정되었습니다.

 

2002년 한일 월드컵 공격수로 베스트 11에 뽑힐 정도로 

다양한 포지션에서 제 능력을 유감없이 발휘하였습니다.

 

한일 월드컵 이후엔 대표팀 주장을 맡았고

2004년 아테네 올림픽엔 와일드카드로 출전해 8강 진출에 기여했습니다.

 

 

프로 무대에서는 국내 울산에서 뛰며

통산 142경기 37골 9도움이란 기록을 남겼습니다.

 

그 이후 일본 J리그 무대에 뛰어들어

가시와 레이솔과 요코하마 마리노스에서 맹활약하다

일본 무대에선 특히 요코하마에서 4시즌을 뛰며 2003~04년에

리그 2연패라는 금자탑을 쌓는데 기여했었습니다.

 

2006년 현역에서 은퇴한 이후에도 
방송 프로그램 '날아라 슛돌이'에서 어린 선수들을 지도하며 대중에 인기를 끌었고

 

잠시 2009년 춘천기계공고에서 본격적인 지도자 생활을 하다가

2014년부터는 울산대 감독으로 경험을 쌓고

2018년 전남 드래곤즈에서 잠시 활약하다가

2019년 5월 인천에서 축구인생을 마감하였습니다.

 


최하위권인 인천을 맡아

1부 리그 잔류라는 막중한 임무를 안고 매 경기마다 살얼음판 같은 생존 경쟁을 치러야 했던 

그해 10월 황달 증세로 입원하더니 11월 췌장암 4기 진단이라는

충격적인 소식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사실 췌장암은 조기에 발견하지 못하면

치료가 거의 불가능한 사형 명령이나 다름 없었기 때문입니다.

 

축구 인생에서 그라운드를 누비며

많은 기쁨을 선사했고고코치 및 감독으로서 리더십을 발휘했어도

병마와 싸우기에는 역부족이었는가요?

 

현충일이 지난 바로 다음 날 7일

향년 50세하는 꽃다운 나이에

그렇게 빨리 하늘의 별이 되다니 가슴이 너무 아픕니다.

 

췌장암은 5년 생존율이 5% 이하로 예후가 매우 나쁜 암인데

대부분의 경우 암이 상당히 진행된 후에 발견되기 때문에

발견 당시 수술 절제가 힘들고

육안으로 보기에 완전히 절제되었다 하더라도

미세 전이에 의해 재발율이 높고 생존율 향상이 적습니다.

 

아무리 위학 기술이 발달했다지만

췌장암의 원인은 아직까지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았고

암이 상당히 진행되기 전까지는 증상이 없는 것 때문에

완치가 거의 불가능한 병입니다.

 

건강을 회복하고 다시 돌아온다던 그 약속!

 

3년 간의 투병 생활에도 불구하고

끝내 지키지 못하고 일찍 별이 되고 말았습니다.

 

히지만 청소년 대표와 올림픽 대표, 국가대표 등 연령별 대표팀을 두루 지냈고

2002년 한·일 월드컵 4강 신화의 주축이었을 뿐만 아니라

국가대표팀간 경기 기록만 해도

124경기에서 18골을 떠뜨렸습니다.

 

1만 1160분동안

시간으로 따지면 186시간 동안

녹색 그라운드에 남긴 등 번호 6번!

당신의 족적은 영원히 잊지 않을 것입니다.

 

젊은 나이에 국가의 축구 발전을 위하여

할 일이 태산 같이 많지만

이제는 모든 짐 다 내려놓고

좋은 세상에서 우리나라를 환히 비추는 

영롱한 별이 되기 바랍니다.

 

그동안 수고하였습니다.

그리고 감사합니다.

 

* 사진 출처: 네이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