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대 초반 일본에 건너가 유학을 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이때만 해도 삼성은 일본에서 TV 브라운관을 수입해서 칼라 텔레비전을 파는 정도의 기술 수준이었습니다.
그런데 당시 일본에는 쏘니, 미쯔비시, 히타치, 토시바 등 유명한 전자회사가 10개가 넘어 우리나라와는 비교가 되지 않았습니다.
가끔 일본의 전자상가에 가면 텔레비전은 물론 카세트 녹음기, 워크맨 등 갖고 싶은 것들이 너무 많았습니다.
우리의 삼성 전자제품은 일본에 내놓기에는 너무나 보잘 것 없었고 '삼성'이 한국 기업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39년이 지난 지금 삼성은 일본의 모든 전자회사의 매출액보다도 훨씬 많습니다.
삼성의 기적은 여기에서 긑나지 않았습니다.
지난 10월 20일 발표한 ‘글로벌 세계 100대 브랜드’에서 삼성전자는 브랜드 가치가 애플, 아마존, 마이크로소프트, 구글 다음 세계 5위에 올랐습니다.
미국에 이어 경제대국을 자랑하는 중국에서도, 일본에서도 독일에서도 삼성보다 브랭드 가치가 높은 기업은 없습니다.
1윌부터 4위까지가 다 미국 기업이고 그 다음이 한국의 삼성입니다.
세계 여행을 나가면 도시 중심가에 삼성 로고가 없는 도시가 없을 정도로 많고 메이저 리그에서 뛰는 선수들의 유니폼에도 한때 삼성 로고가 새겨져 있었습니다.
삼성이 이처럼 세계 굴지의 기업으로 올라오기까지는 고 이건희 회장의 공이었습니다.
취임 당시 “삼성을 세계적인 초일류기업으로 성장시키겠습니다”고 했던 이건희 회장은 일찌기 반도체에 눈을 돌려 이 회장 취임 때인 1987년 10조원이 채 안되던 삼성그룹 매출을 2018년 기준 386조원을 넘겨 39배로 불렸습니다.
그동안 삼성은 스마트폰, TV, 모니터, D램, 낸드플래시 등 수많은 세계 1등 가는 품목을 만들어 수출함으로써 한국이 15위 이내에 드는 경제강국을 만드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특히 1983년 자신의 사재를 털어 시작한 메모리 반도체에 대한 투자는 1993년 세계 1위(D램 부문)로 올려놓았습니다.
이건희 회장은 자동차 사업으로 실패도 했고 2008년엔 비자금 조성과 불법 승계 작업 등으로 특검에 기소돼 일부 유죄판결을 받았으나 단독사면을 받고 2년 뒤 삼섬에 복귀하여 갤럭시 시리즈로 스마트폰 세계 1위를 차지하는 기염을 토했습니다.
한편 이건희 회장은 IOC 위원으로 있으면서 체육계 인맥을 활용해 평창 올림픽 유치에 결정적인 기여도 하였으며 가난한 나라에 많은 학교를 지어주고 있습니다.
비록 이건희 회장은 운명을 달리했지만 삼성의 초일류를 향한 끊임없는 도전은 아직도 미완성입니다.
이제 삼성이 없는 대한민국은 있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여당에서는 "이 회장이 삼성의 글로벌 도약을 이끌며 한국경제 성장의 주춧돌을 놓은 주역이었다는 칭찬과 함께 그의 인생은 파란만장했던 영욕의 삶이었다"고 평가절하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건희 회장은 반도체, 휴대전화 등의 첨단 분야에서 삼성이 세계1위의 글로벌 기업이 되는 기틀을 마련한 위대한 공적을 절대로간과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세계 초일류 기업을 위해 '자식 빼놓고 모두 바꿔라'라는 혁신의 마인드가 귀에 생생합니다.
고 이건희 명예회장의 명복을 기원합니다.
* 사진 출처: 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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