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러내는 즐거움/안타까워라

그리운 어머니

옥상별빛 2019. 3. 23. 07:05

 

벚꾳이 이제 막 피려고

물을 잔뜩 머금은 춘분 때

 

어머니는

아프다 소리 한번 내지 않으시고

걱정 말라 하시며 조용히 눈을 감으셨습니다.

 

돌이켜보면

가난하고 어렵던 70년대 이전 시절에

앞길이 막막함에도 육남매를 낳고 키우셨습니다.

 

척박한 토지를 일구고

여름 농사는 보리와 유채를

가을 농사는 콩, 고구마, 조를

농한기 겨울에는 암소를

 

그리고 계절에 관계없이

사리나 조금 때에 틈을 내시어

망망대해의 사나운 파도와 싸우며

그물과 작살로 물고기를

수십여 바닷속 소라, 전복, 해삼, 문어를

조류가 밀려나간 갯바위에서 미역과 톳을

 

바람 불면 바람 부는대로

비가 오면 비가 오는 대로

자나깨나 쉬는 날 없이 일을 하시며

자식들을 키우셨습니다.

 

자식들을 다 출가시키고 난 이후에도

맛있는 음식 사 드시지 않고

 

먼훗날 세상을 하직할 때

수의와 장례 비용으로 쓰라고

통장을 몇개 남기고 떠나셨습니다.

 

하지만 자식들은

어머니를 기쁘게 해드리지 못하였습니다.

 

비록 사위이긴 하지만 둘을 먼저 보내시고

커가는 손자가 결혼하는 것도 못보시고

더우기 왕손자를 안아보지도 못하시고

조용히 세상을 하직하셨습니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어머니의 어린 시절 삶과

임종 직전까지 겪으셨던 애환에 대해

 

자식들은 모두 낱낱이 녹음하고

이야기로 엮을 준비도 하지 않고

차일피일 하다가

우리 집 역사를 잃어버렸습니다.

 

아!

그리운 어머니

 

불러도 불러도 대답없는 어머니

살아 생전에 바쁘다는 핑계로

주말이나 찾아뵙고

손에 쥔 전화로 안부 전화 제대로 못하고

어머니의 가슴에 상처만 안긴

불효 자식을 널리 용서해 주십시오.

 

가시는 구만리 황천길이

어둡고 불편하고 힘드시드래도

 

더 좋은 세상에 가시어

아버지와 이승에서 못다한 이야기를 나누시며

부디 오래오래 영면하시옵소서.

 

고생 않으셨습니다.

너무 보고 싶습니다.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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