넘치는 즐거움/너무 대단하네

오스트리아가 낳은 천재화가 구스타프 클림트(Gustav Klimt)

옥상별빛 2019. 1. 8. 03:38

 

 

 

 

 

 

 

 

구스타프 클림트(Gustav Klimt)는 오스트리아카 낳은 천재화가입니다.

 

아르누보 계열의 장식적인 양식을 선호하여 관능적인 여성 이미지와 찬란한 황금빛, 화려한 색채를 특징으로 하고 성(性)과 사랑, 죽음에 대한 알레고리로 많은 사람들을 매혹시키고 있습니다 다.

 

구스타프 클림트는 1862년 오스트리아 빈 근교의 바움가르텐에서 태어났습니다.

보헤미아에서 이민 온 그의 아버지는 금세공사이며 판화가였지만 크게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클림트는 14세 때인 1876년 빈 응용미술학교에서 회화와 수공예적인 장식 교육을 받았습니다.

 

1883년 졸업 후에는 그의 동생 에른스트(Ernst)와 동료 학생인 프란츠 마치(Franz Matsch)와 함께 공방을 차려 공공건물에 벽화를 그리는 일로 생계를 꾸려나갔습니다.

 

그러다카 1880년대 말경 빈에 새로 들어선 국립극장과 미술사박물관에 장식화를 그려 건축 장식미술의 대가로 이름을 알리게 되었습니다.

 

클림트는 인상파와 상징주의 등 다양한 아방가르드 운동에 관심을 갖게 되어 순수와 응용이라는 이분법을 넘어 총체적인 예술을 지향했습니다.

 

1897년 당시 보수적인 미술 단체의 일원이었던 클림트는 미술과 삶의 상호작용을 통하여 인간의 내면에 접근하고자 하는 ‘빈 분리파’를 결성하고 초대회장으로 추대되었습니다.

 

여기에 에곤 실레(Egon Schiele), 오스카 코코슈카(Oskar Kokoschka), 칼 몰(Carl Moll), 오토 바그너(Otto Wagner) 등 당대 오스트리아를 선도한 화가, 디자이너, 건축가들이 빈 분리파에 참여했습니다.

 

클림트의 작품은 관능적인 여성 이미지와 찬란한 황금빛, 그는 성(性)과 사랑, 죽음에 대한 풍성하고도 수수께끼 같은 알레고리로 많은 사람들을 매혹시켰지만 자극적인 에로티시즘을 강조했다는 비난도 받았습니다.

 

그러한 이유로 빈 대학교 대강당의 천장에 차례로 그린 우의적인 장식화 《철학》, 《의학》, 《법학》은 그 외설성으로 인해 빈 대학교 교수들과 정면충돌하는 사태를 빚자 기하학적이고 지적인 추상 양식으로 변모해갔습니다.

 

클림트는 빈 분리파가 더 이상 본래의 취지에 충실하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하여 탈퇴하고는 이탈리아 라벤나의 모자이크와 장식적인 패턴, 금을 사용하여 눈에 띄는 독창적인 양식을 발전시켰습니다.

 

클림트는 1918년 1월 11일 갑작스런 뇌출혈이 있은 후 2월 6일 일련의 합병증으로 56세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주요 작품에는 《유디트 Judith》(1901), 《프리차 리들러의 초상 Portrait of Fritsa Reidler》(1906), 《아델레 블로흐 바우어의 초상 Portrait of Adele Bloch-Bauer》(1907), 《입맞춤 The Kiss》(1907~1908), 《다나에 Danaë》(1907~1908), 《아담과 이브 Adam and Eve》(1917~1918) 등이 있습니다.

 

한편 구스타프 클림트(Gustav Klimt)의 주요 작품들은 오스트리아 빈의 벨베레데 궁전에 전시되고 있는데 많은 관광객들의 시선을 집중시키고 있습니다.

 

 

*내용 출처 네이버

*사진 촬영지 오스트리아 빈 벨베레데 궁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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