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에 112억을 번다는 사우디아라비아의 왕세자 만수르가 의문의 헬기 추락사로 생을 마감했습니다.
무함마드 빈 살만 알사우드(32)가 ‘피의 숙청’을 하는 가운데 왕자들이 잇달아 숨지는 사고가 발생하자 의혹이 커지고 있습니다.
만수르 왕자와 정부 고위 관료 7명이 남서부의 아시르 주도 아브하 인근에서 헬리콥터 추락 사고로 사망했는데 정확한 사고 원인은 밝혀지지 않았지만 만수르 왕자의 죽음은 빈 살만 왕세자의 숙청과 관련되어 있을 것이라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만수르 왕자는 한때 왕세제이었지만 살만 국왕이 2015년 즉위하자마자 만수르를 폐위시키고 조카인 무함마드 빈 나예프를 왕세자로, 아들인 빈 살만을 부왕세자에 책봉했습니다.
현재 살만 국왕의 아들 빈 살만은 올해 6월 사촌형인 빈 나예프를 밀어내고 결국 왕세자 자리를 차지하여 차기 국왕 1순위로 등장했습니다.
사우디 왕가는 지금까지 군부 권력을 나누어 가짐으로써 왕세자끼리 서로 견제하는 것이 관례였으나 빈 살만은 왕세자 몫인 국방부 상비군은 당연히 거느리고 경찰 및 국가수비대까지 손에 넣어 다른 왕세자의 쿠데타는 꿈도 꾸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압둘아지즈 전 국왕의 아들이자 국가수비대 장관으로 한때 왕세자 후보로도 거론됐던 무타입 빈 압둘라 왕자도 비리로 체포되면서 모든 군대를 손에 넣은 빌 살만은 그것도 안심이 안 되어 피의 숙청을 계속하는 것이 아니냐는 관측이 나돌고 있습니다.
빈 살만 왕세자는 국민의 존경을 받는 인물로 거듭나고자 외부적으로는 여성의 운전을 허용하는 개혁을 실시하면서 등 많은 개혁을 시도하면서 내부적으로는 잔 가시를 다 자르고 있습니다.
사우디는 이란의 무기 유입을 막는다는 이유로 예멘의 국경과 영공, 항구를 모두 봉쇄하에 양국이 국교 단절로 이어졌는데 내막을 들여다보면 무서운 왕위 쟁탈전이 낳은 결과라는 것이 밝혀지고 있습니다.
지금 사우디에서 벌어지는 왕자의 난을 보니 조선시대 태조의 아들이 제 1~2차 왕자의 난을 일으킨 것이 생각납니다.
조선 건국 초기 제1차 왕자의 난은 건국의 최대 공신인 정도전·남은 등이 왕실의 힘을 약화시키고 유교 중심의 중앙집권체제를 강화하려는 목적에서 왕실 권력의 기반인 사병을 혁파하려 하자 수세에 몰린 이방원은 한씨 소생 왕자들과 함께 1398년 8월 25일 사병을 동원하여 정도전·남은 등 반대세력을 제거하고, 세자 방석과 그의 형 방번을 살해한 사건입니다.
제1차 왕자의 난이 성공하자 방원의 뜻에 따라 둘째인 방과가 정종(定宗)으로 왕좌에 올랐습니다.
그런데 정종과 정안왕후 사이에 소생이 없자, 세자의 지위를 놓고 방원과 방간이 왕권은 노리는데 공신 책정문제로 방원에게 불만을 품고 있던 박포가 방간을 충동질하여 1400년 1월 방원과 방간 사이에 무력충돌이 일어났지만 방원의 승리한 것이 제2차 왕자의 난입니다.
이방원은 정종이 있었지만 거의 강제로 왕위를 물려받아 태종(太宗)이 되었습니다.
왕자와 신하에 대한 피의 숙청을 끝내고 태종으로 왕좌에 오른 이방원은 나쁜 짓을 많이 했지만 조선 최고의 성군인 세종대왕을 낳았습니다.
세종대왕이 없었다면 오늘날 한글도 없었은지 모를 일인데 폭쿤이나 다름없는 왕이 성군을 낳았으니 역사란 결과가 좋으면 나쁜 것이 다 상쇄되나요?
사우디 왕좌의 난이나 김정은의 독재 정권을 보니 마치 우리 조선의 왕좌의 난을 재현하는 것 같아 힘이 없으면 목숨도 부지하지 못하는 형제들이 불쌍합니다.
*사진 출처 : 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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