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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 기사와 기사도

옥상별빛 2017. 10. 28. 14:41

 

 

 

 

 

 

 

 

 

 

 

 

 

 

뉘른베르크에서 시대 서양 기사들이 이었던 갑옷을 전시한 것을 보니까 그 모양이 엄청 다양했습니다.

 

무게가 사람의 체중만큼이나 나감직한 무거운 갑옷을 위떻게 입고 말을 타고 다니며 창을 휘둘렀는지 상상이 안 갑니다.

 

갑옷은 무려 100kg에 육박해서 말에 올라타는 것도 힘들고 움직이는 것은 물론 입고 벗는 것도 아주 버거웠을텐데 무더운 여름에도 과연 입을 수 있었을지 상상해 보면 도무지 이해가 안 갑니다.

 

서양의 기사(騎士)란 무력을 사용하고 주군을 지켰던 사람으로 처음에는 농민 출신이 많았으나 나중에는 귀족도 생겼습니다.

 

12~13세기가 되면서 기사는 넓은 영토를 소유한 국왕, 공작, 백작 등의 대영주와 봉건 계약을 맺었던 소영주들이나 이들의 가신 이었는데 기사들은 대영주들과 계약을 맺고 이들로부터 토지를 받는 대신 무력봉사를 약속함으로써 주군을 지켰습니다.

 

돈키호테에서처럼 대영주나 가신이라는 신분에 관계없이 개인적인 자격으로 일정 기간의 신체적, 정신적 훈련을 받고, 기사 서임식과 같은 특정 의식을 통해 완성된 무인토 기사라 불렀습니다.

 

당시 기사가 되기 위해서는 예의범절, 일정기간의 훈련, 기사 서임식 등의 조건이 필요했습니다.

 

하지만 대영주의 지시에 따라 움직이던 기사들도 사람인지라 귀부인과의 사랑에 얽힌 이야기도 소설 속에 등장하곤 했습니다.

 

기사로서 지켜야 했던 것으로 충성, 무용, 예의, 명예 등의 덕목을 이상으로 삼는 규범을 기사도라고 대다수가 귀족이었던 기사들이 전장에서는 용맹을 떨쳤지만 평상시는 우아한 태도를 취했습니다.

 

이에 12세기 철학자 솔즈베리 존(John of Salisbury)은 기사의 정의에 대해 '교회를 보호하고, 반역에 대항해 싸우고, 사제직을 존경하고, 가난한 자들을 불의에서 구하고, 자신의 고장에 평화를 가져오고, 형제들을 위해 피를 흘리고, 그리고 필요하다면 자신의 목숨을 내놓는 일'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기사가 분명 충성, 무용, 명예 관념과 결부된 고귀한 존재였으나 절대 권력이 없던 중세 초, 중기 내내 유럽 곳곳은 깡패처럼 난동을 부리는 기사들로 많았고 전쟁이 일어나면 기사들은 적을 찌르고 벤 다음 투구를 벗겨 머리를 베어가기도 했습니다.

 

좌우간 봉건시대 영주에 귀속되어 영토를 확장하려는 나쁜 군주 밑에서 기사는 딱딱하고 엄청나게 무거운 갑옷을 입고 살륙을 일삼는 노예(?)나 다름없었습니타.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를 보며 기사를 비웃지만 오늘날 서양인에게 기사와 기사도 정신을 발휘하는 사람은 과연 몇 명이나 될까요?

 

전쟁과 사랑 사이에서 죽고 죽이며 살아온 중세 기사들의 갑옷을 보면서 많은 애환이 교차합니다.

 

 

*내용 출처 : '네이버의 지식 백과'의 글에 필자가 많은 생각을 가미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