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리는 즐거움/연습으로 쓰는 글

가을날

옥상별빛 2017. 9. 27. 03:12

 

주여!

작렬하는 태양 앞에 움츠렸던 바람도

이제는 들녘에 잔뜩 흘려 보내야 할 때입니다.

 

너무 세지 않게

너무 짧지 않게

그저 곡식들의 잎사귀가 손짓을 할 만큼만

그저 나뭇잎들이 하나 둘 땅으로 내려올 정도만

 

그래서 잎사귀에 숨어 슴바꼭질하던 과일들에게

여러 가지 자태로 얼굴을 내밀도록

잎사귀를 한 장 한 장 거두어 주소서.

 

그래서 벌과 나비에게 충분한 양식을 챙기도록

비 대신 포근한 햇살을 가득 안겨 주소서.

 

먼 여정을 준비하는 나뭇잎들이 길가에 서서

어디론가 떠날 채비를 할 무렵에

서서히 등을 간질여 주소서.

 

올해 가을

내가 네 곁에 있을 때

네가 내 곁에 있을 때

한 때 이곳에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무척 행복했었노라고 추억하게 해 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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