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여!
작렬하는 태양 앞에 움츠렸던 바람도
이제는 들녘에 잔뜩 흘려 보내야 할 때입니다.
너무 세지 않게
너무 짧지 않게
그저 곡식들의 잎사귀가 손짓을 할 만큼만
그저 나뭇잎들이 하나 둘 땅으로 내려올 정도만
그래서 잎사귀에 숨어 슴바꼭질하던 과일들에게
여러 가지 자태로 얼굴을 내밀도록
잎사귀를 한 장 한 장 거두어 주소서.
그래서 벌과 나비에게 충분한 양식을 챙기도록
비 대신 포근한 햇살을 가득 안겨 주소서.
먼 여정을 준비하는 나뭇잎들이 길가에 서서
어디론가 떠날 채비를 할 무렵에
서서히 등을 간질여 주소서.
올해 가을
내가 네 곁에 있을 때
네가 내 곁에 있을 때
한 때 이곳에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무척 행복했었노라고 추억하게 해 주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