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이제 다 자라 출가를 하는 성인처럼
바람이 불면 떠날 것입니다.
한 어머니 밑에서 오손도손 사이좋게 살다가
어디로 떠날지 어떻게 살아갈지도 모르는 채
한줄기 바람이라도 불면 여행할 것입니다.
어떤 씨앗은 양지의 토양에서
새들의 노랫소리를 들이며 무럭무럭 자라다가
꽃도 피워보지 못하고
사람들의 밥상에 올라 생을 마칠 것이고
어떤 씨앗은 길가의 한 모퉁이에서
혹시 사람의 발에 밟힐세라 자나깨나 떨며 자라다가
결국은 조상처럼
동그란 홀씨주머니를 만들 것이고
그리고 또 어떤 씨앗은
투명한 유리 구슬 안에 깆히었다가
화려한 목걸이로 변신하여
영원히 죽지 않는 불사신이 될 것입니다.
형제여 자매여
우리가 이 다음에 어디서 무엇이 되든
운명은 다 하늘에 맡길 수밖에...
그러나
봄날의 어느날 초저녁 헤어지기 전에
우리는
설레임과 두려움이 교차하는 가운데
바람에 몸을 맡기고 떠나야만 했던 그 순간까지는
너무너무 행복했었음을 오래 기억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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