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종으로부터 배우는 위기관리의 리더십
‘조선왕조에서 배우는 위기관리의 리더십’을 읽고 나서
우리 민족은 5천 년 동안 위기를 극복해 오면서 생존해 온 자랑스러운 민족이다. 과가 우리나라의 동북 지방에는 많은 민족이 살고 있었지만 중국의 한족에 동화되거나 흡수되어 버렸고 섬나라 일본족과 몽고족을 제외하고 지금까지도 건재하고 있는 민족은 한민족뿐이다. 지정학적으로 중국과 일본의 강대국 틈에 끼어 수많은 외침을 당하면서도 주권 국가로서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결코 사대주의 사상도 아니고 우연의 산물도 물론 아니다. 거기에는 지도자들의 위기를 극복하는 지혜와 슬기 그리고 지도력이 있지 않았다면 불가능한 일이다.
그런데 학생들에게 우리나라 역사에 있어서 위대한 지도자(리더)를 고르라고 하면 대다수의 학생이 훈민정음을 창제하고 많은 업적을 남긴 세종대왕을 꼽는다.
그런데 세종대왕이 우리 역사에 성군으로 지금에도 추앙을 받게 되기까지는 아버지인 태종의 뛰어난 리더십 때문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나도 『조선왕조에서 배우는 위기관리의 리더십』책을 읽기 전까지는 왜 세종대왕 뒤에 숨은 태종의 리더십에 대하여 전혀 아는 바가 없었고 오로지 왕위찬탈을 위하여 제1, 제2의 왕자의 난을 일으킨 부도덕한 왕으로만 생각하였다.
그런데 조선왕조가 세워진 14세기 말에서 20세기 초까지 조선을 건국한 태조, 위기관리능력과 기획능력을 모두 지닌 태종, 창의적 지도력을 갖춘 세종, 훈척 정치의 시대를 연 세조, 사림시대를 연 성종, 탕평으로 국론을 통일한 영정조, 연립정권의 위기에 직면한 광해군, 탕평책으로 국론을 타파한 영조, 정조 등의 왕이 당시의 시대적 상황에 비추어 위기를 관리해 나가는 뛰어난 리더십을 읽으면서 많은 감동을 받기 시작하였다.
이방원은 전쟁터에서 본능적으로 위기에 잘 대처하며 무장(武將)을 대대로 배출한 이성계의 위기관리 능력을 이어받은데다가 명석한 두뇌를 지니고 스스로 탁월한 기획력을 갖추어 자신의 목숨을 온건히 보존하며 조선 왕조의 기틀을 다진 장본인이다.
이방원이 이성계 가문에서 처음으로 문과에 급제할 무렵, 이성계는 그때까지도 시골무장의 때를 벗지 못하고 있어서 아들의 과거 급제는 신분상승으로 이어질 수 있었기 때문에 매우 기뻐했고 나중에 이방원은 예문관 제학을 지냈고 왕의 비서인 밀직사대언으로 근무하는 등 역대 임금 중 유일하게 신하의 관직을 경험한 왕으로 남게 되었다.
이방원은 위화도회군을 단행하였을 때에 위기관리를 제대로 하지 하였으면 역사에 기억되지 못할 인물로 남았을 지도 모른다. 이방원은 이성계가 위화도회군을 하여 개성에 들어왔을 때 고려 우왕과 최영 장군의 보복이 있을 것을 예측하고 미리 친어머니인 한씨 등과 포천에서 함흥으로 피난을 떠나면서 그의 첫 번째 위기를 넘긴다. 반면 최영은 요동정벌이 떠나기 전부터 이성계 가족을 인질로 잡아두지 않은 허술한 일처리 때문에 고려 왕조가 무너졌으니 역사의 전개가 참으로 아이러니컬하다.
두 번째 위기관리 능력은 제1차 왕자의 난이 일어난 때이다. 이성계의 둘째 부인 신덕왕후의 소생 방석을 세자로 책봉한 뒤 개국공신대열에조차 끼일 수 없었던 이방원은 충북 관찰사에 임명되어 중앙정치무대에서 밀려났다. 하지만 이방원은 그렇다고 아버지 태조에 거역도 할 수 없는 처지라 정도전, 남은 등 문관세력과 조영무 등의 무장 세력들을 포섭하며 정국동향을 관망하며 아버지의 이복동생 이화, 이복형의 아들 이천우, 동복인 동생 방과와 형 방간과 손을 잡고 이성계 휘하의 무장 조영무, 장사길, 이거이, 이숙번 등을 포섭하며 기회가 오기를 관망하고 있었다.
1398년 8월 26일 이방원은 이성계가 병석에 누워 다른 곳으로 치료를 하기 위해 궁궐에 들어오라는 전갈을 받는데 여기에는 자신의 정비 민씨로부터 정도전 일파의 공격이 있을 것이라는 정보를 제공하고 사병해산과정에서 미리 궁궐에 감춰 두었던 무기를 넘겨주었기에 이방원은 선수를 쳐서 정도전 일파와 왕자들이 거느리고 있던 시위패를 혁파할 수 있었다.
당시 상황은 어느 누구도 목숨을 안전하게 지킬 수 없는 위기의 상황이었으며, 수많은 실세들이 미래에 대한 불안감으로 긴장의 고삐를 늦출 수 없는 상황이었으리라.
이러한 과정에서 사람들은 자신에게 닥쳐온 위기를 극복하지 못해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경우가 바로 왕자의 난인데 태종처럼 개인이나 자신이 몸담고 있는 조직에 위기가 닥쳐올 때 올바른 판단과 대처 능력이 삶과 죽음을 가르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어쨌든 이방원이 제1차 왕자의 난에서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정도전의 허술한 신변 관리와 조정에서 사병해산과정에서 허술한 무기 관리가 문제였으며 사태의 움직임을 기민하게 주시하고 환기시켜 준 민씨가 아니었으면 역사는 달라졌을 지도 모른다.
이제 남은 것은 이방원이 국왕의 자리에 앉는 것뿐이었는데 1년 반 뒤 제2차 왕자의 난이 일어나면서 또 한 번 위기를 맞는다.
제2대 국왕으로 즉위한 정종은 실세인 동생 이방원의 문치를 봐야 하는 처지인데다가 뒤를 이을 적자가 없었다. 이에 방원과 방간이 서로 경쟁하는 처지에 놓이게 되는데 1400년 정월, 방원의 바로 윗 형인 넷째 방간이 박포와 함께 사병을 동원하여 '제2차 왕자의 난'을 일으킨다. 하지만 이방원과 그의 사병들이 이들을 조기에 진압하였고 이 일로 방원은 세제의 자리를 확보한다. 방간이 선수를 쳐서 군사를 일으켰지만 전투력과 조직력을 갖춘 방원의 군대에 적수가 되지 못하였다.
몇 차례 위기를 넘기고 국왕의 자리에 오린 태종은 정종으로부터의 선위 등 일련의 사태를 수습하기 위해 고려 왕조를 고수하는 정몽주의 제거, 태종이 거사할 때 공을 세원 이거이 세력, 이숙번 세력을 제거하고 왕비 민씨의 동생인 민무구, 무질 형제는 어린 세자를 통해 이른바 협유집권(挾幼執權), 즉 어린 세자 틈에 끼어 집권을 획책하려 했다는 혐의를 받게 되어 제거되는데 진짜 원인은 태종과 민씨 사이의 불화였다. 민씨는 태종 집권 이전에는 남편의 등극에 많은 역할을 했지만 태종이 보위에 오른 후 잉첩들만 가까이 하자 이에 심한 투기심을 드러내 태종과 불화가 잦았다. 이 때문에 외척 세력으로서 아버지 민제와 왕비인 원경왕후의 권세를 믿고 활개를 치던 민씨 형제들은 불만을 품게 되면서 태종의 비위를 건드렸다. 그것이 곧 그녀의 동생 민무구 형제에게 영향을 미쳐 태종과 틈이 더 벌어지는 결과를 낳았고 급기야 민무구 형제가 죽게 되자 그녀는 그 일로 태종에게 불손한 행동을 계속해 왕비의 자리에서 쫓겨날 처지에 직면하기도 한다. 하지만 태종은 세자와 왕자들에게 끼칠 영향을 생각해 끝내 그녀를 폐비시키지 않았는데 그 이유는 무엇일까?
위기관리는 다른 그 어떤 것보다도 태종처럼 자신의 마음을 추스른 데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이라고 본다.
인생의 위기를 맞이하여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된 사람들도 그들의 마음을 잘 추스르고 다시금 살길을 찾아보았으면 어떻게든 살아날 길이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들의 마음이 먼저 흔들려 버리니까 더 이상 어떻게 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세제로 책봉된 방원은 병권을 장악하고 동시에 중앙 집권의 틀을 다져 나갔다. 그 일환으로 사병을 혁파하고 군사를 삼군부로 집중시켰으며 도평의사사를 의정부로 고쳐 정무를 담당하게 했고 중추원을 삼군부로 고쳐 군정을 맡도록 했다. 이처럼 방원은 세제 시절에 이미 왕권 안정책을 마련하고 고려 정치 문화의 잔재들을 없애기 시작했다. 정무와 군정을 분리시켰으며 권문세가의 힘을 약화시키기 위해 노비변정도감을 실시해 노비의 변속을 관리하기도 했다.
아울러 자신의 집권을 명분화하기 위하여 조준을 재상 자리에 두어 견제하고 1,2차 왕자의 난 때 공을 세운 공신들도 자신의 적대 세력이 될 가능성이 있으면 가차 없이 제거하였다.
태종은 국왕의 자리에 오르자 중앙제도와 지방제도의 정비로 고려 잔재를 완전히 청산하기 시작하고 군사 제도를 정비해 국방을 강화하고 토지, 조세 제도의 정비를 통해 국가 재정의 안정시키는 한편, 노비 제도를 새롭게 정비하고 신문고 등을 설치하여 민심을 살피려고 노력한다. 또한 태종은 훈신과 재상이 중심이 된 정치를 극복하고 백성의 안정된 삶을 통한 국가의 안전과 국왕을 중심으로 한 정치를 구현하려고 했으니 참으로 남과 다른 위기관리의 리더십의 일면을 보는 듯했다.
그리고 태종은 사찰에 예속된 노비를 공노비로 전환시켰으며 처녀로 비구니가 된 사람은 환속시켰고 연등제, 초파일제 등을 폐지시킨다. 1405년 의정부 기능을 축소하고 이조, 호조, 예조, 병조, 형조, 공조로 이뤄진 육조장관들을 정3품에서 정2품의 판서로 높였다. 이에 따라 전곡과 군기를 관장하던 사평부와 승추부를 폐지하고 그 사무를 호조와 병조로 이관시켰으며 좌우정승이 장악하고 있던 문무관의 인사권을 이조와 병조로 이관시키기에 이른다. 또한 같은 해에 대언사를 강화하여 동부대언을 증설하고 6대언으로 하여금 육조의 사무를 나눠 관장하도록 했다. 또한 육조의 각 조마다 각각 3개의 속사를 설치하고 당시 까지 존속한 독립관아 중에서 의정부, 사헌부, 사간원, 승정원, 한성 부 등을 제외한 90여 관아를 그 기능에 따라 육조에 분속시켰으니 그의 탁월한 리더십은 정말 대단하다고 본다.
거북선에 관한 기록이 문헌상에 나타난 것은 '태종실록'부터이다. 이런 기록으로 보아 거북선은 왜구 격퇴를 위한 돌격선으로 특수하게 제작된 장갑선의 일종으로 짐작된다. 따라서 거북선은 왜구 침입이 잦았던 고려 말기에 고안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태종대에 이 거북선의 조성 흔적이 있는 것은 왜구와의 수전에 대비한 것이거나 또는 대마도 정벌 같은 왜구 토벌 작전을 감행하기 위한 준비책이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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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자신이 정치를 잘 한다고 운운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정치의 고수이며 뛰어난 리더십을 지닌 인물은 바로 태종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태종은 여론보다 앞질러 가지 않고 인내심을 가지고 여론이 성숙되기를 기다렸다가 숙청을 점진적으로 진행하는 고난도의 테크닉을 지녔을 뿐만 아니라 상대를 궁지에 몰아넣고 식량을 대 주는 등 임기능변력과 연기력도 일품인 인물로도 역사가들은 기록하고 있다.
특히 인재를 보는 안목과 바르게 키우는 능력도 있었으니 조선왕조 최장수 재상이며 청백리인 황희나 맹사성도 그가 키운 거목들이며 청백리 유관, 대마도정벌의 이종무, 4구 6진의 개척자 최윤덕도 바로 그가 길러낸 인재들이다.
그런데 정말 태종이 탁월한 것은 당시 54세로 왕권 행사에 지장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왕위를 미련 없이 아들인 세종에게 물려주고 이선으로 물러남으로써 후계구조 정리를 한 것이다.
태종은 권력의 절정에서 상왕으로 물러나는 용기와 욕심 없는 마음은 오늘날 지도자들에게 큰 가르침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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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이란 것은 예나 지금이나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아편과 같은 것이라서 자신만이 최고라는 착각에 빠져 기력이 없을 때까지도 쥐고 있다가 자신을 망치는 사례가 참으로 많았다.
19세기말부터에 본격적으로 황제제도가 붕괴되기 시작하고 자본주의를 추구하는 민주공화제와 공산주의를 추구하는 사회민주주의 그리고 입헌군주제, 파시스트 등의 정치제제가 나타나는 과정에서 모두가 국민을 위한다는 대전제를 달고 황제제도의 폐해를 주장하며 정치를 주도하는 세력이 나타나지만 권력의 달콤함과 속성상 선진화된 정치체계를 갖추지 못한 나라에서는 1세기가 지난 지금까지도 독재자는 계속 이어지지 않았던가?
루마니아의 차우세스쿠, 동독의 호네커, 필리핀 마르코스, 인도네시아 수하르토, 캄보디아의 폴포트, 이라크의 후세인, 한국의 이승만 등은 집권 중에 국민의 반대에 부딪쳐 실각하였다. 구유고슬라비아 티토는 사후 유고가 크로아티아와 세르비아로 분리가 되었고 크로아티아계에서는 호평, 세르비아계에서는 대표적 악평을 받는 인물이고 국가가 분리되어 정체성이 사라졌으며 구소련 스탈린은 나중에 대표적인 정치보복을 받았다.
그런가 하면 올해 연초부터 들불처럼 번진 민주화시위는 중동ㆍ북아프리카 지역의 독재자들을 차례로 권좌에서 끌어내렸으며 권력의 욕심을 버리지 못하던 리바아의 카다피도 얼마 전에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였다. 그런데도 아직도 예멘, 시리아, 베네수엘라의 독재자는 아직도 위기의식을 간파하고 있지 못하고 있으니 정말로 한심한 노릇이다. 영원할 것처럼 권력을 휘두르는 이들도 머지 않아 망명길에 오르거나 법의 심판대에 서야 할 운명을 예견해 본다면 태종이 더욱더 위대해 보인다.
위대한 리더는 인생에서 위기나 실패를 전혀 경험하지 않은 사람이 아니고 인생의 위기를 슬기롭게 극복할 줄 아는 바로 태종 같은 사람이라고 본다.
진정한 리더는 평소 지나친 자기 욕심을 버리고 마음의 평온을 유지할 줄 알아야 하며 어떠한 위기 상황에서 흔들리지 않고 침착하게 행동하는 자세를 지녀야 하지 않을까?
바로 태종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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