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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읍민속마을

옥상별빛 2024. 11. 8. 02:03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표선면 성읍리에 있는 성읍마을은 올해로 조선조 세종 5년(1423년)에 정의현의 읍치(고을 수령이 관장하던 관아가 있던 곳)가 된 지 2023년에 600년을 맞이했습니다.

 

 

조선시대의 제주도에는 제주목, 정의현, 대정현 3개의 행정구역(삼읍)이 설치되었는데 성산읍 시흥리부터 서귀포시 법환동까지 한라산 남쪽 지역은 정의현이라 불렀습니다. 

 

성읍은 500여 년간 정의현의 군사·행정·교육의 중심지로 번성해 왔는데 일제강점기에 경제의 중심이 해안마을로 이동하면서 성읍은 쇠퇴하기 시작했습니다.

 

 

1980년대에 들어서면서 성읍마을은 그 역사적 중요성이 부각되어 문화적 차원에서 새로운 전기를 맞게 되었다. 제주도 시청 민속자료 제5호로 지정되었고, 이어 1984년 6월 중요민속자료 188호 국가지정문화재로 승격되었습니다.

 

 

 

 

근현대사의 굴곡과 개발의 속도에 밀려 제주향교와 대정향교는 유무형문화재를 찾기 어려운 지금 제주도에서 역사와 문화를 지켜오고 있는 유일한 곳이 정의향교와 성읍마을입니다. 

 

김정호가 제작한 대동여지도(1861년)에 의하면, 한라산 북쪽이 제주목, 남쪽 동부가 정의현, 서부가 대정현으로 붉은 선으로 구획되어 있습니다. 

 

 

 

 

국가지정 문화재

 

 

😊 느티나무 및 팽나무군

 

서귀포시 표선면 성읍리 881-2번지 외 3필지에 있는 느티나무 및 팽나무군은 1964년 1월 31일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었습니다.

 

옛 도읍지였던(1423-1914년) 표선면 성읍리 군민헌 주변에 있는 느티나무 한그루와 팽나무 세 그루는 천연기념물로 지정·보호되고 있습니다.

 

고려 충렬왕 때에는 이곳에 매우 울창한 숲이 있었다고 전해지고 있으나 지금은 불과 몇 그루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현재 느티나무는 키가 30m, 가슴 높이의 둘레가 5m에 이르러 나무의 나이를 약 1,000년 정도로 보고 있으며, 팽나무는 키가 24~32m, 가슴 높이의 줄기둘레는 2.4~2.5m에 이르고 있어 나무의 나이는 약 600년 정도로 보고 있습니다.

 

 

😊 제주초가 5가구 16동

 

이 마을의 조일훈(객주집), 고평호(고백), 고창환(고택), 한봉일(고택), 고상은(대장간집)은 가옥 전체의 공간 처리와 울타리의 경관 조화가 잘 보존된 제주도의 대표적인 민가입니다. 

 

이 가옥은 순조 29년(1829년)에 건립된 자형 우진각지붕초가인데 안거리, 밖거리, 대문(이문간)이 있으며 안채는 1979년에 해체 보수하였습니다. 

 

안채는 3칸인데 방, 상방, 고팡, 부엌이 있고 방과 접한 곳에 온돌 아궁이(굴묵)가 있습니다. 

 

밖거리는 정의현 당시 관원들이 숙식하던 곳으로 제주의 여느 집 구조와 달리 상당이 가운데 위치하지 않고 동쪽으로 치우쳐 있으며 집 뒤 툇마루가 있을 자리에는 골방이 달려 있습니다. 

 

가옥은 마당을 가운데 두고 ㄷ자형입니다.

 

 

 

😊 제주민요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된 제주민요는 오돌또기, 봉지가, 산천초목, 맷돌노래 4곡이 대표곡인데 전통 민속을 보존하고 있는 성읍마을의 지역적 특성도 잘 반영되어 있습니다. 

 

오돌또기

 

둥그대당실 둥그대당실

너도 당실 원자 머리로

달도 밝고 내가 머리로 갈꺼나

오돌또기 저기 춘향 나온다

달도 밝고 내가 머리로 갈꺼나

둥그대당실 둥그대당실

너도 당실 원자 머리로

달도 밝고 내가 머리로 갈꺼나

한라산 허리에 시러미 익은숭 만숭

서귀포 해녀는 바당에 든숭 만숭

둥그대당실 둥그대당실

너도 당실 원자 머리로

달도 밝고 내가 머리로 갈꺼나

둥그대당실 둥그대당실

두리둥둥둥둥둥 둥그대당실

두우

오돌또기 저기 춘향 나온다

달도 밝고 내가 머리로 갈꺼나

나 너도 당실 원자머리로

달도 밝고 내가 머리로 갈꺼나

둥그대당실 둥그대당실

너도 당실 원자 머리로

달도 밝고 내가 머리로 갈꺼나 

 

 

제주민요는 일하면서 부르는 노동요가 많고 부녀자들이 부르는 민요가 흔하다는 점에서 주목되는데 노

랫말도 특이한 제주도 사두리를 많이 사용하고 있으며, 한스러운 느낌을 그념하듯이 나타내어 색다른 정취를 자아냅니다.

 

현재 고 조을선 선생의 외손녀인 강문희(1974년생)는 전수교육사로서 제주민요의 본바탕을 버리지 않고 보존, 전승하는 데 힘을 쏟고 있습니다.

 

 

도지정 문화재

 

 

😊 정의향교

 

정의향교(도 유형문화재 제5호)는 조선시대 지방의 교육기관으로 처음 사당을 짓고 성현 5위를 모셔 제향을 한 것이 시초입니다. 

 

태종 16년(1416년) 정의현정이 이설하게 되어 안무사 정간 재임 시에 진사리(현 성읍리)로 옮기고 영조 14년 (1738년) 현감 나억령이 명륜당과 재실을 세웠습니다.

 

순조 9년(1809년)에 현감 여명은 성북편 회원동으로 이축한 바 있으며, 헌종 15년(1849년) 목사 장인식이 현 위치로 다시 옮겨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향교 경내의 건물로는 대성전, 명륜당, 삼문 등이 있습니다.

 

 

 

😊 돌하르방(도 민속자료 제2-22-33호(12))

 

우석목.무석록 벅수머리 등으로 불리며 제주목 정미현 대정현의 성문 입구에 세워졌던 것으로 도 전체적으로 45기 그 중 12기는 성읍리에 있습니다. 

 

석상의 형태는 대체로 벙거지형 모자, 부리부리한 왕방울 눈 큼지막한 주먹코, 꼭 다문 입, 배 위아래로 위엄있게 얹은 두 손의 모습을 하고 있다. 성읍리 돌하르방의 평균 신장은 141cm이며, 제작 연대는 1754년(영조 30년) 경으로 추측됩니다. 

 

이 석상은 성문 앞에 세워지며 수호신척·주술종교적·경계금표적 기능을 지니고 있어, 육지의 장승과 같은 역할을 맡았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 오메기술과 고소리술

 

오메기술은 성읍 마을에서 전승되어 온 토속주로 각종 의식 행사시 제주 또는 농주로 사용해 왔습니다. 

 

재료는 주로 차좁쌀을 사용하는데 이 좁쌀을 물에 담갔다가 가루 내어 먹(오메기떡)을 만들어 삶고 방망이로 다진 다음 누룩가루와 반죽하여 술독에 담아 놓은 후 뚜껑을 덮고 15일 동안 발효시킵니다.

 

술독에서 맨 위에 뜬 맑은 웃국은 청주가 되고 밑국은 탁주인 오메기술입니다.

 

 

고소리술은 우선 '오메기'를 발효시킨 술밑을 증류하는 것으로 알코올 농도가 40~45도에 이르는 독주입니다. 

 

양조할 때 술독에 묻어둔 술밑을 고소리로 증류해서 소주를 만들기 때문에 고소리술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합니다.

 
 

 

 

😊 정의현성

 

태종 16년(1415년) 정의현이 설치될 당시, 정의현성은 지금의 위치가 아닌 성산읍 고성리에 위치하였습니다. 이는 우도 인근에 출몰하는 왜구를 가까이서 효과적으로 막아보자는 데 더 큰 의미가 있었으나, 별다른 효과를 얻지는 못하였습니다. 

 

이러한 연유로 정의현성은 세종 4년(1422년) 12월에 진사리로 이설이 결정되고 이에 도안무사 정간은 제주판관 최치렴을 책임 감독관으로 삼아 1423년 1월 9일부터 1월 13일까지 불과 5일 만에 제주도 전체의 백성들을 동원하여 새로운 정의현성을 완성하였습니다. 

 

당시 성의 규모는 둘레 2520척, 높이 13척이며 동·서·남3문 외에 여칩 180개가 시설되어 있었으며, 생수가 솟아나는 곳이 없었으므로 빗물을 담아 두는 우물을 2곳에 마련하기도 하였습니다.

 

 

 

 

😊 초가장(중요민속사료 188호 - 특별자치도 무형문화재 제19호~)

 

홍원표(목공분야), 강창석(석공분야), 김권엽 - 강창석(토공분야), 강임용(지붕잇기분야)이 제주초가를 만드는 기능보유자입니다.

 

독특한 전통민가 '제주초가' 주거양식을 결정짓게 하는 인자로 기후와 은신처, 재료와 공법 등의 물리적 요소와 종교, 경제 등의 사회적 요소를 들 수 있는데, 주거양식은 인간이 생존하면서 기후조건에 따라 자연에 적응하면서 정형화되어 온 역사적 산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제주초가는 주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재료를 사용한 것이 특징인데, 화산섬인 제주도의 어느 지역에서나 채취가 가능하고 가공이 비교적 쉬운 현무암과 한라산 초원지대에서 자라는 새(띠)를 사용하였습니다. 

 

제주 초가의 지붕형태에서 볼 수 있는 완만한 지붕 물매, 두꺼운 지붕 이엉, 지붕을 잡아맨 집출, 짧은 지붕 처마 등은 제주의 강한 바람을 고려한 결과로 바람과 오랜 세월 동안 싸우면서 살아온 제주인의 삶 그 자체를 잘 표현하고 있는 주거양식입니다. 

 

벽체는 2중벽으로 나무와 흙으로 축조된 벽체와 자연석 현무암으로 축조된 외벽(벽)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제주 초가가 더욱 제주적으로 표현되는 배경에는 돌담이 있는데, 얼기설기 쌓아 저항을 줄이고 바람의 속도를 완만하게 하여 피해를 최소화하고 제주 초가의 특징 중 하나로 마당을 중심으로 안거리(안채)는 부모 세대,밖거리(바깥채)는 자녀 세대로 공간을 분리하여 가족관계를 형성하면서도 철저히 세대를 구분하고 있습니다.

 

 

😊 영장소리(도 무형문화재 제22-1호)

 

제주도 영장소리는 장례절차에 따라 행상소리, 꽃염불소리(장례놀이하는 소리), 진토굿파는 소리(봉분파는 소리), 달구소리(다지는 소리)로 유형화되며 음악적 사설적인 면에서 공통적인 요소를 간직하면서 제주도내 지역마다 약간씩 변이된 형태로 후렴형식도 조금씩 달리 불리는 특성을 보입니다.

 

장례의식요는 죽음을 다루는 것이지만 소리의 기능성과 가창성을 통해 삶과 죽음에 대한 제주인의 다양한 정서를 담아내고 있습니다.

 

제주도 영장소리 제22-1호 행상소리 보유자 송순원씨는 14세부터 부친으로부터 소리를 전승받기 시작했으며, 15세에는 상여의 선소리꾼이 돼 60여년 동안 성읍리에서 행상소리를 전승해오고 있습니다. 

 

성읍리에서 전승되고 있는 행상소리(영귀소리, 꽃염불소리, 상여소리, 진토굿파는 소리, 멀구소리)를 모두 구연할 수 있고, 소리의 현장성과 역동성을 잘 살림으로써 소리판을 구성하고 변화시키는데 탁월한 능력을 보유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 정의현 객사 전패(도 유형문화재 제36호)

 

전패는 임금을 상징하는 것으로 객사를 지어 모셨으며, 관헌이 새로 부임하거나 어사가 내려오게 되면 우선 공자의 사당인 문묘에 알성하고 다음은 향교유림의 집례로 객사알성을 한 다음 열명이라 하여 자기의 직함과 성명을 기록하여 다. 영원히 보존되었습니다. 

 

그리고 매월 삭망(초하루와 보름에는 모든 관원들이 전패가 모셔진 객사로 와서 분향하여 임금을 기리는 뜻을 표시한다. 이렇기 때문에 객사는 신성시되어 향궐이라고도 불렀습니다.

 

문헌 등에 1847년(헌종 13) 3월 도둑이 정의현 전패를 훔쳐 제주목사 이의식이 체포하여 조정에 보고하였고, 참형으로 처리했다고 합니다.

 

이후 해당 전패는 도적의 손에 더럽혀졌기에 객사 후원에 묻고, 같은 해 6월 11일 임금의 윤허를 받아 정의

현감 이동규가 새로 지금의 전패를 봉안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전패를 정의향교 명륜당 뒤에 있던 오의사묘(의사 오흥태를 모신 사당)에 옮겨졌던 전패는 이후 의사묘가 헐리게 되자, 이후 정의향교대성전으로 옮겨져 봉안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습니다. 

 

 

 

😊 근민헌

 

서귀포시 표선면 성읍정의현로 61 외에 위치한 근민헌은 조선시대 정의현감이 정사를 보던 동헌으로 현재 시청과 같은 건물입니다. 

 

1416년(태종 16) 안무사 오식이 조정에 요청하여, 한라산 남쪽 200여 리 지역을 동서로 구분하고 정의 대정 두 현을 설치할 때, 정의현은 성산읍 고성리에 설치했었습니다. 

 

그러나 고성리는 왜구가 자주 드나드는 우도를 앞에 두고 있어 방어상 어려움이 있고, 또 동부지역에 위치해 있었으므로 서부지역 주민들의 불편이 많아, 1423년(세종 5) 안무사 정간이 현청을 진사리(현 성읍리)로 옮기게 되었습니다. 

 

이는 7년 만에 치소를 고성에서 성읍으로 옮긴 것이며, 근민헌은 1443년(태종 25)에 이건 되었습니다. 

 

1914년 정의 대정 두 군이 폐지되어 서귀포시에 합병될 때까지 정의현의 중심이 되었는데 지금의 건물은 옛 건물을 헐어 내고 조선시대의 것을 고증하여 2014년에 복원한 것입니다.

 

 

*내용 및 사진 출처: visitjeju.net, 네이버백과, 성읍민속마을보존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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