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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헨티나 축구 영웅 마라도나 별세

옥상별빛 2020. 11. 26. 21:01

아르헨티나의 축구영웅 디에고 마라도나(60)가 25일(현지 시각) 별세했다고 아르헨티나 언론이 보도했습니다.

 

마라도나는 이달 초 경막하혈종으로 뇌 수술을 받고 통원 치료를 받으며 회복 중이었는데 이날 오후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 근교 티그레의 자택에서 숨졌습니다.

 

마라도나는 1960년 부에노스아이레스의 빌라 피오리토 지역에서 3난 5녀 중 다섯째로 태어났는데 어려서부터 축구공과 생활한 그는 1976년 15세의 나이로 아르헨티노스 주니어스에 입단하며 프로에 데뷔했습니다.

 

그리고 이듬해인 1977년 최연소 국가대표선수로 발탁되며 '축구신동'으로 이름을 떨치기 시작했는데 1979년에는 세계청소년축구선수권대회에서 6골을 기록하며 아르헨티나를 6전 전승 우승팀의 자리에 올려놓았던 장본인입니다.

 

마라도나는 1982년부터 1994년까지 4차례 월드컵에 출전하여 1986년 맥시코 월드컵 우승과 1990년 준우승을 이끌었습니다.

 

마라도나는 이탈리아로 건너가 클럽에서 7년 동안, 나폴리를 1987년에 세리에A의 첫 우승으로 이끌었고 3년 후 두 번째 우승을 이끌었습니다.

 

지금도 나폴리에는 마라라도나의 얼굴 벽화는 시내를 가로지르고 넓게 그려져 있으며, 어떤 벽화는 후광이 반짝이는 '황금소년'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마라도나는 1991년 약물로 15개월 동안 축구에 대한 금지령이 내려졌으며, 1994년 월드컵에서 약물 테스트가 실패한 후, 그는 경기장에서의 선수생활이 흐지부지 되었습니다. 

 

마라도나는 약물 파동 이후 스페인과 아르헨티나에서 활약하는 동안 팬들과 상대팀을 현혹시키는 그런 모습을 되찾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마라도나는 몰락한 영웅으로 은퇴하기는 했지만 작지만 다부진 체구에서 나오는 순발력과 화려한 드리블, 위력적인 왼발킥으로 그라운드를 평정한 실력이 인정되어 세계 축구사에는 1960년대 브라질의 펠레, 1970년대 독일의 프란츠 베켄바워에 이어 1980년대를 마라도나의 시대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한편 축구 전설 마라도나는 마라도나의 그라운드 밖에서의 사생활은 온갖 기행과 추문, 마약 복용 등으로 논란이 많았습니다.

 

인정받지 못한 아들, 마피아와의 사진 촬영, 코카인 빙수 등이 영국 오스카상 수상작 아시프 카파디아의 나폴리 시절 다큐멘터리에서 상영되었는데, 이 다큐멘터리는 그가 가장 성공적인 축구 선수 생활을 했던 시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마라도나의 정부 크리스티나 시나그라는 디에고 아르만도나 시나그라를 임신한 채 이탈리아로 돌아왔으나 친자 확인하기를 거부했고 2003년까지 그의 아들을 만나지 않았을 정도였습니다.

 

60년생이면 아직도 젊은 나이인데 운명을 달리한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 기사 및 사진 출처: cn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