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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어서는 안될 6.25

옥상별빛 2019. 6. 25. 06:49

 

1945년 제2차 세계대전이 종식되자

우리나라는 일본의 불법적인 점령으로부터 해방되어

광복의 기쁨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카이로회담에서

우리나라의 독립이 약속은 되었으나

북위 38도선을 경계로 하여

남쪽은 미군이 북쪽은 소련군이 진주함으로써

신탁통치로 이어졌습니다.

 

그런데 이 선이 70년 넘도록

지워지지 않을 줄은 누가 알았겠습니까?

 

오히려 680선을 두고 남북이 대치하며

수많은 사람들이 희생당했고

아직도 진행형입니다.

 

당초 미군과 소련군이 한반도에 주둔한 것은

일본군의 무장해제 등 전후처리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북한에 진주한 소련군은

남북간의 왕래와 일체의 통신연락을 단절시키고

38도선을 남북을 고착화하는 정치적 경계선으로 만들었습니다.

 

유엔은 1947년 제2차 총회에서

통일된 한국정부수립을 위하여

총선거를 1948년 5월 31일 이전에

한반도 전역에서 실시하기로 결의하고

선거감시를 위한 유엔 한국임시위원단을 구성하였습니다.

 

그러나 유엔이 결의한 전국적 범위에서의 총선거는

1948년 1월 소련군에 의해 거부당하고

유엔 한국임시위원단의 북한지역 출입이 좌절되었습니다.

 

그러자 1948년 2월 26일 유엔 소총회는

유엔의 감시가 가능한 지역에서의 선거 실시를 결의하였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이승만은

남한 만의 단독 정부 수립을 위해 총선거를 치르려 하자

 

제주에서는 이에 반대하여

제주 4.3 봉기가 일어났습니다.

 

무장대들이 15개 경찰서를 습격함으로써

제주는 7년 동안 3만 명 가량이 희생당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1948년 8월 15일에

반쪽짜리 대한민국의 건국이 선포되자

소련군의 비호 아래 북한지역을 장악한 김일성은

1948년 9월 9일 이른바 '흑백선거'에 의하여

북한지역에 독자적 공산정권을 수립했습니다.

 

소련을 등에 업은 김일성은

1950년 6월 25일 새벽에

소련제 탱크를 앞세워

38선을 넘어왔습니다.

 

이에 남북은 동족상잔의 밀고 밀리는 전투를 3년동안 치르다

1953년 7월에 휴전을 선언하고

지금도 휴전선을 사이에 두고 대치하고 있습니다.

 

전쟁이 종식된 것도 아니고

통일된 것도 아닌 분단의 고통은

이산가족의 고통을 낳게 하고

이념 상의 갈등으로

엄첨난 국력을 낭비하고 있습니다.

 

분단 70년 동안

남한은 그동안 경제 개발로

엄청난 부를 축적했으나

북한은 핵 개발로

우리를 위협하며 호시탐탐 적화야욕에 불타고 있습니다.

 

김정은은 아직도 사이버 공격으로

우리를 괴롭히고 있으며

각종 소요 사태가 일어나

국론이 분열되기를 노리노리고 있습니다.

 

두번 다시 이 땅에 전쟁이 일어나서는 안됩니다.

 

피와 땀으로 이룬 번영을

다시 잿더미로 만들 수는 없습니다.

 

이 땅을 수호하기 위해 목숨을 바친 선열들을 위해서라도

하루빨리 통일을 이루어내야 합니다.

 

 

*사진 출처: 네이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