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필 전 국무총리가 23일 향년 92세로 별세하였습니다.
해방 이후 대한민국 정치사를 좌지우지했던 '3김 시대' 의 막을 내리는 순간이 도래했습니다.
YS, DJ, JP로 대한민국 정치판을 요동치게 만들었던 소위 '3김'은 이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습니다.
3김 중 유일하게 대권을 쥐지 못하고 영원한 2인자란 별명을 얻은 JP씨는 35세 때인 1961년 처삼촌인 박정희 전 대통령의 5·16 쿠데타에 가담하면서 정치사에 등장했습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1979년 10·26 사태로 세상을 떠나고 12·12 쿠테타와 전두환이 대통령이 되자, JP는 '권력형 부정축재자 1호'로 몰려 재산이 빼앗기고 한때 정치활동이 금지당하기도 했습니다.
전두환 정건 당시 YS도 내란 음모죄로 가택연금에 들어갔고, DJ는 구속돼 사형 선고까지 받는 등 3김은 정치에서 멀어지는 듯 했습니다.
하지만 1987년 6월 민주화 항쟁으로 대통령 직선제 바람이 일고 비록 군인 출신인 노태우가 대통령이 되었지만 여기까지였고 3김이 다시 한국 정치의 전면에 등장하기 시작했습니다.
1997년 대선을 앞두고 당시 김종필씨는 자민련 총재였는데 새정치국민회의 총재였던 김대중씨와 후보 단일화를 이루면서 김대중씨가 대통령에 당선되는데 결정적인 기여를 했습니다.
그 공으로 김대중 정부 초대 국무총리를 맡으면서 그 어느 때보다 막강한 권력을 행사하며 김대중 대통령에게 내각제 개헌 약속을 받아내지 못하자 DJP 연합이 깨어졌습니다.
김종필씨는 2004년까지 자민련 총재로서 대권에 도전했지만 그해 총선에서 참패하고 정계에서 은퇴를 했습니다.
9선 국회의원이었던 김종필씨는 4개의 정당을 만들었으며 총리를 두번이나 맡은 최초의 인물이었으나 수시로 정당을 만들었던 것은 정당 정치를 후퇴시킨 사례입니다.
한편 김영삼과 김대중은 대통령이 되었지만 풍운아 김종필씨만 대통령이 되어 보지 못하고 생을 마감했습니다.
한국 정치사에서 김종필씨에게는 고질적인 지역주의와 계파 정치를 탄생시킨 장본인이라는 비난을 퍼붓기도 하지만, 킹 메이커로서의 역할을 수행했던 막강한 힘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부디 명복을 빕니다.
*사진 출처: 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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