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태조에게는 전 왕비 한씨 소생의 여섯 아들과 계비 강씨 소생의 두 아들이 있었습니다.
이중 방원은 한씨 소생의 다섯째 아들이었습니다. 그는 개국에 가장 공이 크고 야심과 재질이 큰 인물이었어도 정도전 등의 견제를 받아 개국공신에도 책봉되지 못했고 세자 책봉 경쟁에서도 밀렸습니다.
태조는 계비 강씨의 뜻에 따라 일곱째 아들 방번을 세자로 삼으려 했습니다. 그러나 공신 배극렴·조준 등은 세자에 적당하지 않다며 방원의 세자 책립을 주장하였습니다.
그래도 태조는 결국 여덟째 아들 방석을 세자로 책봉하고 정도전이 세자를 보살피게 하였습니다. 이에 한씨 소생의 왕자들의 불만이 컸는데 특히 방원이 더 심했습니다.
이에 방원은 이숙번 등의 사병을 동원하여 정도전과 남은·심효생·박위·유만수·장지화·이근 등을 갑자기 습격하여 살해했습니다. 그리고 세자 방석을 폐위하여 귀양 보내는 도중에 살해하고, 방석의 동복인 방번도 함께 죽였습니다. 이렇게 방원의 정적은 거의 제거되었고, 정치 정세도 크게 바뀌었습니다.
정종이 즉위하자 방원은 정치적 실권을 장악해 병권 집중과 중앙집권체제의 강화를 위한 제도개혁을 추진하면서 세력 기반을 강화하였습니다.
이것이 제1차 왕자의 난입니다.
제1차 왕자의 난 이후 태조의 둘째 아들인 정종 이방과가 즉위하면서 이방원은 공신에 서훈됐고 정치적 실권을 잡았습니다. 이방원은 1400년 넷째 형인 이방간이 제2차 왕자의 난을 일으키자 이를 제압하고 그해 정종에게서 왕위를 물려받았는데 이것이 바로 제2차 왕자의 난입니다.
그런데 현대판 왕자의 난이 북한에서 일어났습니다.
짐승만도 못한 김정은은 이복형이 두려웠는지 말레이시아에서 두 여성을 시켜 독침으로 죽이고 말았습니다.
사실 김정남은 돈도 없고 힘도 없어 북한으로 갈 수도 없는데도 김정은의 지령을 받은 여자 간첩의 손에 최후를 맞이하고 말았습니다.
한솥 밥을 먹을 때만 형제이지 결혼하거나 장성하면 파리 목숨보다 못할 때가 많았는데 지금도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다니 권력은 너무 잔인합니다.
김정남의 모 성혜림은 모스크바에 묻혀 있고 이제 김정남은 말레이시아의 어딘가에 묻힐 것을 예상하면 기구한 모자의 운명이라고 아니할 수 없습니다.
파렴치한 김정은을 빨리 암살해야 하는데 언제 실현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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