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의 대규모 공습이 다시 한 번 우크라이나의 밤을 갈랐다. 키이우를 겨냥한 약 10시간에 걸친 미사일·드론 공격으로 민간인이 숨지고 수십 명이 부상했으며, 도시 인프라의 상당 부분이 마비됐다.
혹독한 겨울을 앞둔 시점에서 난방과 전력이 끊긴 주거 지역의 피해는 단순한 군사 작전을 넘어 인도적 위기라는 점에서 더욱 심각하다.
그럼에도 러시아는 이번 공격을 “군사 및 군수 산업과 연계된 에너지 시설에 대한 정밀 타격”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아파트와 요양원이 파괴되고 주민들이 대피하는 현실은 이 설명이 얼마나 공허한지 보여준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러시아는 평화를 원하지 않는다”고 단언한 배경도 여기에 있다. 그는 미국 방문을 앞두고 미·우크라이나가 논의 중인 새로운 평화안을 언급하며, 지금의 공습이 평화 협상에 대한 러시아의 답변이라고 규정했다. 말로는 협상을 이야기하면서 행동으로는 전쟁을 확대하는 러시아의 태도는 국제사회가 더 이상 간과할 수 없는 모순이다. 진정한 평화는 외교적 언어가 아니라 행동의 일관성에서 증명된다.
이번 사태는 우크라이나 전쟁이 여전히 지역 안보를 넘어 국제 질서 전반에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상기시킨다. 폴란드가 전투기를 출격시키고 방공 태세를 강화한 것은 단순한 예방 조치가 아니라, 전쟁의 불안정성이 언제든 국경을 넘어 확산될 수 있다는 현실적 우려의 표현이다.
캐나다를 비롯한 서방 국가들이 추가적인 경제·군사 지원을 약속하는 이유 또한 우크라이나 한 나라의 문제가 아니라 유럽 전체, 더 나아가 국제 규범의 문제로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평화로 가는 길이 쉽지 않다는 점은 분명하다. 새로운 평화안에는 안보 보장과 재침공 시 공동 대응 방안이 포함돼 있지만, 영토 문제, 특히 동부 돈바스 지역의 통제권은 여전히 가장 민감한 쟁점으로 남아 있다. 이 문제를 둘러싼 타협 없이는 협상이 교착 상태에 빠질 가능성도 크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무력 공격을 통해 협상의 주도권을 쥐려는 시도는 국제사회의 신뢰를 더욱 훼손할 뿐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젤렌스키와 푸틴 모두와의 협상 가능성에 대해 낙관적 입장을 보인 것은 외교적 공간이 아직 남아 있음을 시사한다. 하지만 그 낙관이 현실이 되기 위해서는 러시아가 최소한 민간 시설에 대한 공격을 중단하고, 협상 테이블에서 진정성을 보여야 한다. 전쟁의 고통을 감내하는 것은 언제나 민간인이며, 그 대가는 시간이 지날수록 더 커진다.
국제사회 역시 단순한 비난을 넘어 보다 일관된 메시지를 보내야 한다. 무력 도발에는 분명한 대가가 따른다는 점을 보여주면서도, 외교적 해결의 문은 열어두는 균형 잡힌 접근이 필요하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힘의 논리가 지배하는 세계로 회귀할 것인지, 규범과 협력이 작동하는 국제 질서를 지켜낼 것인지를 가르는 시험대다. 지금 필요한 것은 평화를 말하는 언사가 아니라, 평화를 향한 책임 있는 선택이다.

*사진 출처: b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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