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해도 천천히 걷고
때로는 걷다가 멈춰 서서
지나온 길을 뒤돌아보며
냉철하게 판단해 보는 삶이었으면
힘들어도
이 세상은 당신만이 만들어가는
자그만한 역사책이라고 생각하였으면
당신이 있음으로써
미소를 지을 수 있는 단 한 사람이라도 있다고
웃으며 떠나는
지혜로운 삶이었으면
남에게 피해를 주며
당신 혼자
편하게 살겠다고
남을 속이고
남을 해치며 사는
비난받는 인생이 되지 말았으면
남에게 피해는 주지 않았어도
돈을 벌어
당신 혼자
놀 것 다 놀고
즐길 것 다 즐기다 가는
허무한 인생이 되지 말았으면
싫은 사람을 피해 가고
미운 사람을 멀리 하고
만나고 싶지 않은 사람을 회피하며
혼자 편하게 사는 인생이 아니었으면
지금 이 순간에도
당신에게
많은 상처와 고통을 주고
딩신을 괴롭게 하는 사람이 있어도
당신 탓이라는 것을 알고 살아가는 인생이었으면
이해하고 용서하면
당신은 물론
상대도 바꿀 수 있는데
내가 행복해야
비로소 타인의 행복도 존재한다는 것을 아는 인생이었으면
오늘도 밥 먹자는 제의가 없고
오늘도 안부 전화 한 통 없는 것이
오로지 당신이 부덕한 탓임을 깨닫고 사는 인생이었으면
우연한 만남도 소중한 인연으로 삼고
스쳐가는 인연보다 뭉치는 인연으로 사는 인생이었으면
손이나 발을 제대로 못 써도
당신보다
더 불구임에도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이 많다는 것을 아는 인생이었으면
자 이제부터라도
배운 것은 없어도
남에게 귀감이 되고
가진 것은 없어도
남에게 멸시당하지 않는
그런 삶을 꿈꾸었으면
사는 곳은 달랐어도
사는 방법 또한 달랐어도
죽어서 가는 곳은
모두 땅속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으면
돈이 많아
금관이나 옥관으로 치장해서
별궁을 만들어도
돈이 없어
화장을 하여
단지 안에 묻혀도
당신이 떠난 뒤에는
어떠한 힘도
어떠한 영향력도 행사하지 못할 것을 알고 있었으면
자기 혼자 열심히 믿어
천당에 가겠다고 한들
그것이 좋은 안식처는 아님을 깨달았으면
차라리
길고 긴 역사의 한 순간 속에
당신이 있음으로써
인구에 오래 회자되는 것이
영원한 안식처임을 깨달았으면
비록
인류에게 큰 공헌은 하지 못했어도
당신이 떠난 자리가
아쉽고 허전하지만
조금이라도
더렵혀지지도 않았다면
그래서
결국
만남도 헤어짐도
세월 앞에서는
누구나 피해서 갈 수 없는
절대 진리란 것을 알고 이 순간을 살아갔으면
*사진 촬영지 : 제주 방림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