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하는 즐거움/타도

부소산성 의열문

옥상별빛 2017. 12. 13. 09:58

 

 

 

부소산성으로 오르는 사자문을 들어서서 오르는 길목에 삼충사(三忠祠)가 있습니다.

 

이 사당은 백제말엽 의자왕(641-660)에게 충성을 바친 백제의 충신인 성충(成忠:?∼656), 흥수(興首:?∼?), 계백(階伯:?∼660) 등 세 분의 충절을 기리기 위해 세운 사당입니다.

 

이 사당은 1957년에 세웠으며 매년 10월 백제문화제 때 이곳에서 삼충제(三忠祭)를 지내는 곳입니다.

 

이 사당은 1984년 5월 17일 충청남도문화재자료 제115호로 지정되었습니다.

성충(成忠)은 백제 의자왕 때의 좌평(佐平)으로 의자왕이 향락에 빠지자 국운을 염려하여 이를 간했다가 옥에 갇혔습니다. 옥에 갇힌 성충은 단식을 하면서 왕에게 방탕한 생활을 삼가라고 간청했습니다. 그는 죽음에 임박해서도 적군이 육로로는 탄현(炭峴: 충남 대덕군)을 지나지 못하게 하고 수군은 기벌포(伎伐浦:금강 하구)에 들어오지 못하게 하며 험준한 곳에 의존하여 적을 막아야 한다고 왕에게 글을 올렸는데 왕은 듣지 않았다고 합니다.

 

흥수(興首)는 의자왕 때 좌평을 지낸 대신으로 성충이 죽은 후 국운을 염려하여 충언을 했다가 유배를 당했습니다. 마침 나ㆍ당연합군이 쳐들어오자 왕은 흥수가 생각나 유배지로 사람을 보내 흥수의 의견을 묻자 그는 “신라군을 탄현에서 막고, 당의 수군이 백강(白江 : 백마강)에 들어오지 못하게 하라.”고 알려 주었습니다. 그러나 왕은 유배지의 흥수가 자기를 원망하고 앙심을 품었을 것이라고 판단하여 이번에도 듣지 않았습니다. 결국 신라군은 탄현을 넘어 황산벌로 들어오고, 당나라 소정방이 이끄는 수군은 백강을 건너 사비성으로 접근해 왔습니다.

 

계백(階伯)장군은 달솔이었는데 나ㆍ당 연합군이 도성을 향하여 진격해 오자 5천 결사대를 조직하여 황산벌로 나가 5만의 신라군을 맞았습니다. 전쟁결과를 예측한 계백장군은 전장에 나가기 전에 아내와 자식들을 불러 놓고 “적들에게 붙잡히어 노비가 되어 욕된 삶을 사느니 차라리 죽는 것이 더 낫다.”며 가족들의 목을 베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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