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가는 즐거움/마을의 유래

대정읍 상모리

옥상별빛 2013. 5. 20. 10:51

* 마을 소개

 

상모리는 제주도 서남쪽, 아름다운 분화구와 해안절경을 자랑하는 송악산을 품고 있는 관광요충지인 마을이다.상모리는 하모리와 함께 모슬포에 속하였으며 처음에 동쪽에서 서쪽으로 제1모슬포리, 제2·3모슬포리라고 하였다가 상·중·하 모슬포리로 개칭 되었고, 그 뒤 1749년경 중모슬포리는 폐지되었다. 상모리의 취락 형성은 처음 '들메기(정지논 서북)'에서 취락이 형성되었다가 서쪽으로 이동하여 모슬봉앞 절왓에 두 번째로 취락이 형성되고 세 번째로 현재 위치로 남하하여 먼저 대동과 서상동(2리)이 형성되고 차차 남쪽으로 확장되어 중하동, 서하동(3리)이 생기고 한편 동쪽으로는 이교동과 산이수동(1리)이 형성되었으며 잠시동안 알오름 마을이 생겼다가 일제시대에 폐동되었다. 1910년 한일합방으로 상·하모리로 개칭하였고 1914년 5월 15일 소유주를 등기하도록 고시하여 토지 세부측량을 실시하면서 마을 경계가 확정되었다. 1985년 7월 1일 남제주군 동리명칭과 구역에 관한 조례 개정으로 상모 1·2·3리로 분리하였다. 상모1리는 인구가 약 780명으로 이교동과 산이수동이 있으며 서부지역의 절경 송악산을 끼고 있으며, 동쪽으로 안덕면 사계리와 경계를 이루고 있는 곳으로 산이수동에는 마라도유람선을 타려는 사람들도 연중 북적이는 곳이다.

상모2리는 6.25동란 당시 육군 제1훈련소가 창설되어 전시 국군양성의 요람으로 자리잡은 마을이다 지금도 당시의 훈련소 정문이 그대로 남아 있으며 해병부대가 위치하여 당시의 기개를 떠올리게 하는 역사의 고장으로 대동과 서상동으로 이루어져 있다. 주민들 1800여 명의 대다수가 농업에 종사하며 겨울감자와 특용작물들을 재배하여 높은 소득을 올리는 근면한 마을이기도 하다.

상모3리는 제주시에서 일주도로변을 따라 모슬포의 중심까지 59km여의 거리에 위치한 마을이다. 진동산을 중심으로 자연부락인 중하동이 있고, 남쪽으로 하모1리와 인접한 마을로 1200여 명의 주민이 산다. 상모1-3리는 특징이 비슷하며 주 소득원은 겨울감자와 마을이 주소득 자원이고 감귤을 하거나 어업종사자도 다수 있다.

 

 

* 볼거리

 

일제 강점기 군용비행장을 간직하고 있는 상모리는 일제 잔재가 많이 남아 있다.

- 알뜨르비행장

- 비행기 격납고 : 당초 20개소가 있었으나 1개는 훼손되어 현재는 19개가 남아있으며 격납고는 "가미가제"라 불리는 자폭용 비행기 공습 대피용으로 설치되었다. 격납고 재원은 굴천정과 지면 사이 높이 3.6m, 길이 18.7m, 너비 6.7m 이고 콘크리트로 만들어졌으며 지붕에는 흙 위에 잔디를 심어 위장하였다.

 

―비행기 정비고 : 상모리 1601, 상모리 1566번지에 각각 있었으나 현재는 비행장 관제탑 인근에 기둥 일부만 남아 있다. 기둥의 재원은 기둥둘레 4.8m, 기둥높이 3.35m, 기둥과 기둥사이 2.1m이며 현재 10개의 기둥이 남아 있다.

- 대공포 진지 : 대공포 진지 섯알오름 정상에 콘크리트 담벽으로 조성된 진지가 남아 있다.

―어뢰정접안시설 : 어뢰정 접안시설 어뢰정 접안시설은 산이수동 해안 모래사장에 있었으며 어뢰정을 동굴에 옮기기 위해 시설한 것으로 약 60m 정도가 되며 간조시 콘크리트 구조물이 나타나므로 지금도 확인할 수 있다.

- 해안어뢰정 동굴 : 해안 어뢰정 동굴 해안 어뢰정 동굴송악산 동녘 산이수동 해안에는 어뢰정(자폭용 어뢰정)을 숨겨놓기 위한 동굴이 15개소 있다. 높이, 폭은 3∼4m 이고 길이는 20여m이며 상호 연결 된 동굴도 있다.

― 내륙 참호 : 6개소

- 방공호 : 1개소

― 탄약고 : 2개소

- 섯알오름: 2차 대전 말기 미군의 상륙에 대비하여 제주도 전체를 군사 요새화한 일제는 이 섯알오름에 전쟁을 위한 탄약고를 축조하였고, 그들이 패망하여 떠나면서 폭파시켜 버린 까닭에 큰 웅덩이 모양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가장 가슴 아픈 사건은 1950년 음력 7월 7일 새벽, 버려진 이 탄약고 터에서 193명의 양민이 군경 토벌대에 의해 학살된 것이다. 종결된 것으로 여겨졌던 4 3의 피바람이 한국전쟁의 발발과 함께 또 다시 불어 닥쳤던 것이다. 좌익분자를 사전에 격리, 차단한다는 명분으로 자행된 '예비 검속'은 무고한 양민들을 죽음으로 내몰았다.

이날 새벽 2시에 처형된 이들의 시신은 유족들에 의해 수습되었으나, 새벽 5시에 처형된 132명의 시신은 당국의 방해로 6년 8개월 만인 1957년에야 비소로 수습될 수 있었다. 진실이 밝혀질 것을 꺼려한 정권의 압력 때문이었다. 탄약고 바닥은 시멘트로 되어 있었기 때문에 빗물이 제대로 빠지지 않아, 시신들이 썩어 마치 늪처럼 변해 갔다고 전해진다.

 

 

 

 

 

 

  

 

 

 

 

* 살거리: 감자, 마늘, 자리돔, 방어

 

* 주변 관광지: 산방산과 용머리, 서광리 소인국, 가파도와 마라도

 

* 숙박 시설

- 바닷가 하우스: 제주도 서귀포시 대정읍 상모리 위치, 객실 요금, 편의 시설, 주변 관광지

www.seasidehouse.co.kr

- 송악 리조트: 제주도 서귀포시 대정읍 상모리 위치, 객실, 부대시설, 이용요금, 주변 관광지, 예약 안내 www.saresort.com

- 바다의향기: 제주도 서귀포시 대정읍 상모리 위치, 객실 요금, 편의 시설, 송악산 주변 관광지, 예약 안내. www.seaaroma.kr

- 풀문제주: 제주도 서귀포시 대정읍 상모리 위치 펜션, 객실, 부대시설, 예약 안내. www.fullmoonjeju.com

 

 

'찾아가는 즐거움 > 마을의 유래' 카테고리의 다른 글

소금 문화관  (0) 2019.05.03
제주의 명소 산책(마라도)  (0) 2013.08.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