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리는 즐거움/가슴으로 읽는 글

꽃으로 피어나소서

옥상별빛 2018. 4. 3. 05:40

 

70년 전 이 땅 제주에는

어디 말할 수가 있었으랴

 

인권도 없고

인간의 존엄성도 없이

토벌대나 무장대에게

많은 양민들이 학살당했으니

 

아무 죄도 없는데

마을의 누군가가 잘못했다고

총칼을 겨누며

무조건 집밖에서 나오라고

집을 불지르고 다녔으니

 

나오면 살려줄까 순순히 응했더니

어린 애나 할머니 할 것 없이

돌아온 것은 총알뿐

 

공포에 소리 한번 지르지 못하고

부모와 형제를 불러볼 시간도 없이

학교 운동장에서

마을 공터에서

바닷가에서

비참하게 죽어갔지요

 

왜 죽어야 하는지

원인도 이유도 모르는채

꽃 한번 피워보지 못하고

꺼져 갔지요

 

이 아름다운 강산에

꿈 한번 펼쳐보지 못하고

사라져 갔지요

 

피로 물들인 땅

피가 스며든 물

 

하지만 비바람에 씻기고 씻기다 보니

그 흔적 어디 있으리오

 

제주도 중산간 곳곳에

대나무 숲이 있고

간혹 아름드리 나무가 서 있으니

 

그때 불던 바람도 없고

그때 울던 새소리도 없어졌거늘

 

다만

이곳이 그때 마을이었음을 증명할뿐

 

당시 어느 마을이건간에

무서워 마을 근처 동굴에 숨어도

나오면 죽고

안 나와도 죽고

 

영문도 모르는 채

억울하게 죽어간 영혼이

어디 제주도의 한 곳에만 있었으리오

 

해변가는 해변가대로

중산간은 중산간대도

안전한 곳이 아무데도 없었지요

 

토벌대인 군경이

이처럼 양민을 무참하게 죽였어도

잘못했다 벌 받은 자 없었으니

이게 나라였나요?

 

단정에 반대하며 일어섰던 무장대도

군경을 대상으로 맞서 싸웠다면 좋았었는데

왜 죄없는 양민을 공격했나요?

 

토벌대도 무장대도

아무런 죄 없는 민가를 쑥대밭 만들었으니

 

누구 할 것 없이

다 죄인인 것을

 

계절이 바뀌고 또 바뀌기를

어언 70년

 

새파랐던 청춘도

살아 계섰으면

이제는 머리가 하얀 백발

 

하지만

세월이 흐르고 보니

너나 나나 다 희생자였던 것을

 

이제 억울함을 호소해도

들어줄 사람 없고

 

오로지 역사만이

죽은 이의 마음과 함께 하고 있으니

 

이제 갈 곳 없이

이 주변에 맴돌지 말고

 

아름다운 한 송이 동백꽃으로 피어나

편한 곳으로 가소서

 

그때 못다한 이야기랑

역사 속에 담겨 두고

 

부디 좋은 곳에서

영면을 누리소서

 

살아 남은 저희들이

진실의 역사로 바로 세우고

모든 상처와 아픔을 보듬으며

화해와 상생으로

평화의 싹을 피우게 하소서

 

모든 설움 눅이시고

한 송이 동백으로 피어나시어

영원히 이 땅을 지켜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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