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4절기
5일을 1후(候)라 하고, 3후를 1기(氣)라 하여 1년을 24기로 나눌 때 월초(月初)에 있는 것. 월중에 있는 것을 중기(中氣)라 하며, 24기는 12절기와 12중기로 되어 있다. 현행의 태양력에 따르면 절기는 매월 4~8일에 있게 되고, 중기는 매월 하순에 있게 된다. 그러나 절기의 입기일을 매월 초 1일로 하는 새로운 태양력을 구상하면 중기는 언제나 월의 중앙에 있게 된다. 이런 역을 절월력(節月曆)이라고 한다. 태음태양력에 국한하여 채택하던 중국에서 절월력이라는 일종의 특별한 태양력이 채택되었다. 그리고 절기입기일을 절일(節日)이라 하고, 절일부터 다음의 절일의 전날까지를 절월(節月)이라 한다. 절월력에서는 1년은 반드시 12절월로 되어 있고 윤달을 두는 일은 없다. 그리고 절기는 일정한 달의 절일에 들기로 고정되어 있다. 예를 들면 입춘 정월절․경칩 2월절․청명 3월절․입하 4월절 등이다.
○ 입춘(立春)
24절기(節氣)의 첫째. 양력 2월 4일경, 태양이 시황경 315°에 왔을 때를 입춘 입기일로 하여 이후 약 15일간이 입춘기간에 해당한다. 음력으로는 정월의 절기로 동양에서는 이 날부터 봄이라고는 하지만, 추위는 아직도 강하다. 그러나 입춘 전날이 절분(節分)인데 이것은 철의 마지막이라는 뜻이다. 이 날 밤을 해넘이라고 부르고, 콩을 방이나 문에 뿌려서 귀신을 쫓고 새해를 맞는다고 한다. 그러므로 입춘을 마치 연초(年初)처럼 본다. 옛날 중국에서는 입춘 15일간을 5일씩 3후(候)로 갈라서, ① 동풍이 불어서 언 땅을 녹이고, ② 동면하던 벌레가 움직이기 시작하고, ③ 물고기가 얼음 밑을 돌아다닌다고 하였다. 잡절(雜節)은 입춘날을 기준으로 하여 결정된다. 밭에 씨앗 뿌리기가 시작되는 88야(夜), 태풍시기인 210일, 220일 등은 각각 입춘날로부터 88일, 210일, 220일째 날이다.
○ 우수(雨水)
24절기(節氣)의 하나. 입춘 후 15일 후인 양력 2월 19일경이 된다. 날씨가 거의 풀리고 봄바람이 불기 시작하는 시기로서 새싹이 난다. 예부터 우수․경칩에 대동강 물이 풀린다고 하였다. 태양이 황경 330°에 올 때, 우수입기일(雨水入氣日)이 되는데, 음력 정월의 중기이다. 옛사람은 우수입기일 이후 15일간의 기간을 3후(三候)로 5일씩 세분하여 ① 수달이 물고기를 잡아다 늘어놓고, ② 기러기가 북쪽으로 날아가며, ③ 초목에는 싹이 튼다고 하였다.
○ 경칩(驚蟄)
계칩(啓蟄)이라고도 한다. 우수(雨水) 다음의 절기로, 양력으로는 3월 6일경부터 춘분(春分:3월 21일경) 전까지이다. 음력으로는 이월절(二月節)이다. 태양의 황경은 345°이다. 날씨가 따뜻해서 초목의 싹이 돋고, 동면하던 동물이 땅속에서 깨어 꿈틀거리기 시작한다는 뜻에서 이러한 이름이 붙었다. 여러 세시기(歲時記)를 보면, 이 시기에 농촌에서는 개구리의 알이 몸을 보한다고 하여, 논이나 물이 괸 곳을 찾아가 건져 먹는다고 하였다. 또 흙일을 하면 일년 내내 탈이 없다고 하여 담을 쌓거나, 벽을 바르면 빈대가 없어진다고 해서 일부러 벽을 바른다고 하였다. 보리 싹 성장상태를 보고 1년의 풍흉(豊凶)을 점치기도 하였으며, 단풍나무를 베어 나무에서 나오는 물을 마시면 위병과 성병에 효과가 있다고도 하였다. 이 무렵 대륙에서 남하하는 한랭전선이 통과하면서 흔히 천둥이 울리기 때문에, 땅속에 있던 개구리․뱀 등이 놀라서 튀어나온다는 말도 있다.
○ 춘분(春分)
양력 3월 21일경부터 청명(淸明) 전까지의 15일간을 말한다. 음력으로는 2월중이다. 불교에서는 춘분 전후 7일간을 봄의 피안이라 하여 극락왕생의 시기로 본다. 옛날 중국에서는 춘분기간을 5일을 1후(候)로 하여 3후로 구분하였는데, ① 제비가 남쪽에서 날아오고, ② 우레소리가 들려오며, ③ 그 해에 처음으로 번개가 친다고 하였다. 천문학에서는 태양이 남에서 북으로 천구의 적도와 황도가 만나는 점(춘분점)을 지나가는 3월 21일경을 말한다. 이 날은 밤낮의 길이가 같지만, 실제로는 태양이 진 후에도 얼마간은 빛이 남아 있기 때문에 낮이 좀 더 길게 느껴진다. 음력으로는 2월인데 바람이 많이 불어서 "2월 바람에 김칫독 깨진다.", "꽃샘에 설늙은이 얼어죽는다."는 속담이 있을 정도이다. '꽃샘 추위'는 바람신이 꽃이 피는 걸 샘낸다 해서 붙은 이름이다
○ 청명(淸明)
태양이 황경(黃經) 15°에 도달하는 4월 5․6일경으로, 음력으로는 3월 중에 있게 된다. 춘분(春分) 15일 후, 곡우(穀雨) 15일 전이다. 옛 중국사람은 청명 15일 동안을 5일씩 3후로 세분하여, ① 오동나무의 꽃이 피기 시작하고, ② 들쥐 대신 종달새가 나타나며, ③ 무지개가 처음으로 보인다고 하였다. 한국에서는 4월 5일을 식목일로 정하고 있는데, 날이 풀리고 화창하여 일년 중 식목에 가장 적당한 시기이다. 그러므로 청명은 예로부터 한 해의 농사를 시작하는 중요한 날로 여겨졌다. 이 날 또는 다음 날 오게 되는 한식(寒食)과 혼동을 일으키는 경우가 많으므로 ‘한식에 죽으나 청명에 죽으나‘라는 속담이 생겼다. 오늘날의 식목일과도 대개 겹친다.대부분의 농가에서는 논농사 준비 작업으로 논밭둑 가래질을 시작한다.
○ 곡우(穀雨)
청명(淸明)과 입하(立夏) 중간인 4월 20일경에 든다. 봄의 마지막 절기로, 음력으로는 삼월중(三月中)이다. 태양의 황경(黃經)은 30°가 된다. 봄비가 내려 백곡(百穀)이 윤택해진다는 뜻이며, 이 때가 되면 농가에서는 못자리를 마련하는 등 본격적인 농사철이 시작된다. 서해에서는 흑산도 근처에서 겨울을 보낸 조기 떼가 북상해 충남 격렬비열도(格列飛列島) 근처까지 올라오므로 조기잡이가 한창이며, 이 때 잡히는 조기를 특별히 ‘곡우살이‘라 하는데, 살은 적지만 연하고 맛이 좋다. 나무에 물이 가장 많이 오르는 시기여서 전남, 경남․북, 강원도 등에서는 깊은 산속으로 곡우물을 먹으러 가는 풍속이 있다.
"곡우에 가물면 땅이 석자가 마른다." 즉 그 해 농사를 망친다는 말이 있다. 옛날에는 이 무렵에 못자리에 쓸 볍씨를 담갔는데, 밖에서 부정한 일을 당하거나 본 사람은 집 앞에 와서 불을 놓아 나쁜 귀신을 몰아낸 다음에 집 안에 들어오고 들어와서도 볍씨를 보지 않을 정도로 소중히 여겼다고 한다.
○ 입하(立夏)
24절기(節氣)의 일곱째. 양력 5월 5~6일경으로, 태양의 시황경이 45°에 있을 때이다. 음력으로는 4월절(四月節)로 곡우(穀雨) 후 15일이다. 여름에 들어섰다고 하여 입하라 한다. 옛날 중국에서는 입하 15일간을 5일씩 3후(候)로 세분하여, ① 청개구리가 울고, ② 지렁이가 땅에서 나오며, ③ 왕과(王瓜:쥐참외)가 나온다고 하였다. 음력에서는 보통 4, 5, 6월의 석달을 여름이라고 하지만 이것은 너무 엉성한 구분이고, 엄격히 입하 이후 입추 전날까지를 여름이라고 규정짓는다.
곡우 무렵에 마련한 못자리가 자리를 잡아 농사일이 더욱 바빠지는 때이다. 농작물도 잘 자라지만 해충이 많아지고 잡초까지 자라서 이것들을 없애는 일도 많아진다.
○ 소만(小滿)
입하(立夏) 후, 망종(芒種) 전의 절기로, 양력으로는 5월 21일경부터 약 15일 간이며, 음력으로는 4월중이다. 태양 황경은 대략 60°의 위치에 온다. 만물이 점차 생장(生長)하여 가득 찬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기후로는 첫여름에 들며, 농사력에서는 모내기가 시작되고 보리 베기에 바쁜 시기이다. 옛 중국에서는 소만을 5일씩 3후(三候)로 등분하여, ① 씀바귀가 뻗어나오고, ② 냉이가 누렇게 죽어가며, ③ 보리가 익는다고 하였다. 한국에서는 이 시기에 심한 가뭄이 들곤 한다.
농가에서는 모내기 준비, 가을 보리 먼저 베기, 여러 가지 밭농사의 김매기들이 줄을 이어 제일 바쁜 계절로 접어든다. 지금은 농사 기술이 발달해서 이 때쯤 모내기가 시작된다.봄철 입맛을 돋우는 냉잇국은 이 때 즐겨 먹는 음식으로 유명하다.
○ 망종(芒種)
소만(小滿)과 하지(夏至) 사이의 절기로, 태양의 황경(黃經)이 75°에 이르는 6월 6일경에서 하지 전까지의 약 15일간을 말한다. 곡식의 종자를 뿌리기에 적당한 시기라는 뜻이다. 옛 중국에서는 망종을 5일씩 끊어서 3후(三候)로 나누었는데, 초후(初候)에는 사마귀가 생기고, 중후(中候)에는 왜가리가 울기 시작하며, 말후(末候)에는 지빠귀가 울음을 멈춘다 하였다. 농사력에서는 모내기와 보리 베기를 하는 시기이다.
망종은 벼, 보리 등 수염이 있는 곡식의 씨앗을 뿌리기에 적당한 때라는 뜻으로 "보리는 익어서 먹게되고, 볏모는 자라서 심게 되니 망종이요.", "햇보리를 먹게 될 수 있다는 망종." 이라는 말이 있었다. 모내기와 보리 베기가 겹쳐서 1년 중 제일 바쁜 때였기 때문에 특히 보리 농사가 많았던 남쪽 농촌에는 "발등에 오줌싼다."는 말이 전해 온다.
○ 하지(夏至)
망종(芒種)과 소서(小暑) 사이에 있으며, 양력 6월 21일경이 시작되는 날이다. 음력으로는 5월중이다. 하지 때는 일년 중 태양이 가장 높이 뜨고 낮의 길이가 길므로, 북반구의 지표면은 태양으로부터 가장 많은 열을 받는다. 그리고 이 열이 쌓여서 하지 이후에는 기온이 상승하여 몹시 더워진다. 중국에서는 하지 15일간을 5일씩 끊어서 3후(候)로 나눠서, ① 사슴의 뿔이 떨어지고, ② 매미가 울기 시작하며, ③ 반하(半夏)의 알이 생긴다고 했다. 한국의 농사력에서는 모내기가 끝나는 시기이며 장마가 시작되는 때이기도 하다. 천문학적으로는 1년 중 태양의 적위가 가장 커지는, 6월 21일경을 말한다. 태양은 황도상에서 가장 북쪽에 위치하게 되는데, 그 위치를 하지점(夏至點)이라 한다. 북반구에서는 낮의 길이가 가장 길고, 태양의 남중(南中)고도가 가장 높아진다. 특히, 하지점이 적도면에서 북쪽으로 23° 27' 떨어져 있기 때문에, 북위 23° 27'인 지점에서는 이 날 태양이 천정(天頂)에서 남중한다. 그러나 남반구에서는 북반구와 반대로 하지에 낮의 길이가 가장 짧고 태양의 남중고도가 최소가 된다. 또한 동지에는 태양의 남중고도가 최대가 되고, 낮이 가장 긴데, 북반구에서는 그 반대가 된다. 서울(북위 37° 30')에서 태양의 남중고도는 하지 때에는 75° 57'이고, 동지 때에는 29° 03'이다.
옛어른들은 모내기를 모두 끝내고 이 때 까지도 비가 오지 않으면 기우제를 지냈다. 예를 들어 충청북도 단양군의 한 마을은 제물로 개나 돼지, 소를 잡아 그 머리만 용소(폭포수가 떨어지는 바로 밑에 있는 웅덩이)에 넣는다. 그러면 용신이 그 부정함에 노해 비를 내려 씻어 버린다고 한다.
○ 소서(小署)
24절기에서 하지(夏至) 후, 대서(大暑) 전의 절기. 양력으로는 7월 7일경에서부터 약 15일 동안이며, 음력으로는 6월절(六月節)이다. 태양은 대략 황경 105°에 위치하게 된다. 옛 중국에서는 소서 15일간을 3후(三侯)로 나누어서, ① 더운 바람이 불어오고, ② 귀뚜라미가 벽에 기어다니며, ③ 매가 비로소 사나워진다고 하였다. 한국에서는 이 시기가 장마철로, 장마전선이라는 불연속전선이 한반도의 허리를 가로질러 장기간 머무르므로 습도가 높아지고 많은 비가 내린다.
소서는 작은 더위라는 뜻으로 본격적인 더위가 시작되는 때이다. 그래서 온갖 과일과 채소가 풍성해지고 밀과 보리도 먹게 된다. 특히 단오를 전후해서 즐기는 밀가루 음식은 이 때가 가장 맛이 난다고 한다.
○ 대서(大署)
소서(小署) 15일 후부터 입추(立秋) 전까지의 절기로, 양력으로는 7월 23일경 대서가 시작된다. 음력으로는 6월중이다. 태양의 황경이 대략 120°에 달한다. 옛 중국에서는 대서 기간을 5일씩 끊어서 3후(候)로 하였는데, 제1후에는 썩은 풀이 화하여 반딧불이 되고, 제2후에는 흙이 습하고 무더워지며, 제3후에는 때때로 큰 비가 내린다고 하였다. 한국에서는 이 시기가 중복(中伏)으로, 대개 장마가 끝나고 더위가 가장 심해지는 때이다. 그러나 때때로 장마전선이 늦게까지 한반도에 동서로 걸쳐 있으면 큰 비가 내리기도 한다.
대서는 큰 더위라는 뜻으로 몹시 덥고 큰 장마가 지는 경우가 많은 절기이다. 소서와 대서 무렵에는 논밭의 잡초를 뽑고 풀, 짚 등을 썩여 거름을 만들어 두었다. 이 때가 과일 맛이 가장 좋은데 비가 적게 와야 더욱 제 맛이 난다고 한다.
○ 입추(立秋)
양력 8월 8일경. 여름이 지나고 가을에 접어들었다는 뜻을 가진 절기예요. 따라서 이 때부터는 가을 채비를 시작해야 하는데 특히 무, 배추를 심고 서리가 내리기 전에 거두어서 겨울김장에 대비하게 되지요. 김매기도 끝나고 농촌이 한가해지기 시작해서 "어정 7월, 건들 8월." 이라는 말이 전해져요.
○ 처서(處署)
양력 8월 23일경. 처서는 여름이 지나 더위가 가신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이 때는 따가운 햇볕이 누그러져서 풀이 더 자라지 않기 때문에 논두렁이나 산소의 풀을 깎고, 날씨가 선선해 져서 "처서가 지나면 모기도 입이 비뚤어진다."고 한다.
○ 백로(白露)
처서(處暑) 다음, 추분(秋分) 앞의 절기로, 양력으로는 태양황경이 165°에 이르는 9월 8일경부터 추분(9월 23일경) 전까지이다. 음력으로는 8월절이다. 이 시기에는 밤 동안 기온이 크게 떨어지며 대기 중의 수증기는 엉겨서 이슬이 된다. 추석 무렵으로 만곡이 무르익는 시기이다. 옛 중국에서는 이 시기를 5일씩 3후(候)로 나눠서, ① 기러기가 날아오고, ② 제비가 돌아가며, ③ 뭇 새들이 먹이를 저장한다고 하였다. 한국에서는 건조하고 쾌청한 날씨가 계속되나, 간혹 남쪽에서 불어오는 태풍이 곡식을 넘어뜨리고 해일(海溢)을 일으켜 피해를 주는 수가 있다.
백로는 '이슬 로(露)'자를 써서, 밤에 기온이 내려가고 풀잎에 이슬이 맺히는 등 가을 기운이 완전히 나타난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고된 여름 농사를 다 짓고 추수까지 잠시 일손을 쉬는 때라 여자들은 친정으로 부모님을 뵈러 갔다고 한다.
○ 추분(秋分)
백로(白露) 15일 후인 양력 9월 23일경부터 한로(寒露) 전까지의 15일간을 말한다. 음력으로는 8월중이다. 이 시기부터 낮의 길이가 점점 짧아지며, 밤의 길이가 길어진다. 농사력에서는 이 시기가 추수기이므로, 백곡이 풍성한 때이다. 옛날 중국에서는 추분기간을 5일을 1후(候)로 하여 3후로 구분하였는데, ① 우레 소리가 비로소 그치게 되고, ② 동면할 벌레가 흙으로 창을 막으며, ③ 땅 위의 물이 마르기 시작한다고 하였다. 천문학에서는 태양이 북에서 남으로 천구의 적도와 황도가 만나는 곳(秋分點)을 지나는 9월 23일경을 말한다. 낮과 밤의 길이가 같은 날이지만, 실제로는 태양이 진 후에도 어느 정도의 시간까지는 빛이 남아 있기 때문에 낮의 길이가 상대적으로 길게 느껴진다.
하지 이후로 낮이 조금씩 짧아져서 밤과 낮의 길이가 같아지는 때이다. 추분이 지나면 점차 밤이 길어지므로 여름이 가고 가을이 왔다는 것을 확실히 느끼게 된다. 이 무렵에는 논밭의 곡식을 거두어들이고 목화와 고추고 따서 말리는 등 잡다한 가을걷이 일이 있다.
○ 한로(寒露)
추분(秋分)과 상강(霜降) 사이의 절기로, 양력 10월 8일경이 시작되는 날이다. 이때 태양은 황경 195°의 위치에 온다. 음력으로는 9월절이다. 옛 중국에서는 한로 15일간을 5일씩 끊어서 3후(候)로 나눠서, ① 기러기가 초대를 받은 듯 모여들고, ② 참새가 줄고 조개가 나돌며, ③ 국화가 노랗게 핀다고 하였다. 이 시기는 오곡백과를 수확하는 시기로, 이슬이 찬 공기를 만나서 서리로 변하기 직전이다. 또한 단풍이 짙어지고, 제비 등 여름새와 기러기 등 겨울새가 교체되는 시기이다. 한국에서는 이 시기에 국화전(菊花煎)을 지지고 국화술을 담그는 풍습이 있다.
기온이 더욱 내려가기 전에 추수를 끝내야 하므로 농촌은 타작이 한창인 때이다. 대개 중양절과 비슷한 때로 국화전과 국화술을 즐기고 모임과 놀이가 많았다.
○ 상강(霜降)
한로(寒露)와 입동(入冬) 사이의 절기로, 양력 10월 23일경부터 약 15일 동안이다. 태양의 황경(黃經)이 약 210°가 된다. 음력으로는 9월중이다. 이 시기에는 쾌청한 날씨가 계속되며, 밤에는 기온이 매우 낮아 수증기가 지표에서 엉겨 서리가 내린다. 옛 중국에서는 상강을 5일씩 3후(候)로 나누어, ① 승냥이가 산짐승을 잡고, ② 초목이 누렇게 되며, ③ 동면(冬眠)하는 벌레가 모두 땅에 숨는다고 하였다.
옛날 중국 사람들은 상강이 지난 다음 입동이 들기 5일 전에는 벌레들이 겨울잠에 들어간다고 했다.
○ 입동(立冬)
24절기(節氣)의 열 아홉째. 양력 11월 7~8일경으로, 상강(霜降) 후 약 15일, 소설(小雪) 전 약 15일에 해당한다. 태양의 시황경이 225°일 때 입동이 들고, 음력으로 10월 절기이다. 이 날부터 겨울이라는 뜻에서 입동이라 부르고, 동양에서는 입동 후 3개월(음력 10~12월)을 겨울이라고 한다. 늦가을을 지나 낙엽이 쌓이고 찬바람이 살 속에 스며든다. 김장시기는 입동 전후 1주일간이 적당하다고 전해 내려오지만 근래에는 김장철이 늦어져 가고 있다. 옛날 중국에서는 입동기간을 5일씩 3후(候)를 정하여, ① 물이 비로소 얼고, ② 땅이 처음으로 얼어붙으며, ③ 꿩은 드물어지고 조개가 잡힌다고 하였다.
겨울로 접어든다는 뜻을 가진 절기로 입동에 날씨가 따뜻하지 않으면 그 해 바람이 독하다고 전해진다. 더 지나면 배추가 얼어붙고 일하기가 어려워지기 때문에 입동을 전후해서 김장을 담근다. 그래서 옛날에는 이 무렵이면 여자들이 냇가에서 무, 배추를 씻는 모습이 장관을 이루었다고 한다.
○ 소설(小雪)
입동(入冬)과 대설(大雪) 사이의 절기이다. 양력으로는 11월 22일경부터 15일 간이며, 음력으로는 10월 중기이다. 태양은 11월 22일경 황경 240°의 위치에 놓이게 된다. 이 시기에는 첫겨울의 증후(症候)가 보이는데, 옛사람은 이 기간을 5일씩 3후(三侯)로 구분하여, ① 무지개가 걷혀서 나타나지 않고, ② 천기(天氣)가 올라가고 지기(地氣)가 내리며, ③ 폐색되어 겨울이 된다고 하였다.
소설부터는 살얼음이 잡히고 땅이 얼기 시작해서 점차 겨울 기분이 들었다. 이 무렵인 음력 10월 20일에는 바람이 심하게 불고 날씨가 추워서 외출을 삼가고 특히 뱃길을 조심하여야 한다.
○ 대설(大雪)
소설(小雪) 15일 후, 동지(冬至) 전까지의 절기(節氣)로, 양력으로는 12월 7일경이 대설이 시작되는 날이다. 음력으로는 10월중이다. 태양이 대략 황경(黃經) 255°에 도달한다. 눈이 많이 내린다는 뜻에서 이런 이름이 붙었는데, 이는 중국 화북지방의 기상(氣象)을 기준으로 삼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한국에서도 이 시기에 반드시 적설량이 많다고 볼 수는 없다. 옛 중국에서는 대설 기간을 5일씩 3후(三候)로 나눴는데, ① 제1후는 산박쥐가 울지 않고, ② 범이 교미하여 새끼를 치며, ③ 여지(枝)가 돋아난다고 하였다. 한국을 비롯한 동양에서는 입동 이후, 소설․대설․동지․소한․대한까지를 겨울이라 보지만, 서양에서는 추분 이후 대설까지를 가을이라고 본다.
우리 나라에서는 반드시 눈이 많이 오지는 않지만, 이 날 눈이 많이 오면 다음 해 풍년이 들고 푸근한 겨울을 난다고 한다.
○ 동지(冬至)
대설(大雪) 15일 후, 소한(小寒) 전까지의 절기로, 양력 12월 22일경이 절기의 시작일이다. 음력으로는 11월 중기(中氣)이다. 천문학적으로는 태양이 적도 이남 23.5°의 동지선(冬至線:南回歸線)과 황경(黃經) 270°에 도달하는 12월 22일 또는 23일을 가리킨다. 동양의 태음태양력(太陰太陽曆)에서 역(曆)의 기산점으로 중요한 의미를 지닌 동지는 북반구에서는 태양이 가장 남쪽에 이르는 남지일(南至日)이며, 태양의 남중고도가 1년 중 제일 낮아 밤이 가장 긴 날이다. 반대로 남반구에서는 낮이 가장 길고 밤이 제일 짧은 하지가 된다. 이때를 기하여 태양이 하루하루 북으로 올라와 낮이 길어지기 때문에 옛날에는 동지를 중요한 축제일로 삼았으며, 특히 태양신을 숭배하던 페르시아의 미드라교에서는 12월 25일을 ‘태양탄생일‘로 정하여 축하하였다. 이 미드라교의 동지제가 로마로 넘어가 크게 유행하였고, 4세기경부터 현재 기독교의 크리스마스로 대체된 것으로 보인다. 한국에서도 동지를 ‘다음해가 되는 날(亞歲)‘, 또는 ‘작은 설‘이라 해서 크게 축하하는 풍속이 있었다. 궁중에서는 이 날을 원단(元旦)과 함께 으뜸되는 축일로 여겨 군신과 왕세자가 모여 ‘회례연(會禮宴)‘을 베풀었으며, 해마다 중국에 예물을 갖추어 동지사(冬至使)를 파견하였다. 또 지방에 있는 관원들은 국왕에게 전문(箋文)을 올려 진하(陳賀)하였다. 민가에서는 붉은 팥으로 죽을 쑤는데 죽 속에 찹쌀로 새알심을 만들어 넣는다. 이 새알심은 맛을 좋게 하기 위해 꿀에 재기도 하고, 시절 음식으로 삼아 제사에 쓰기도 한다. 팥죽 국물은 역귀(疫鬼)를 쫓는다 하여 벽이나 문짝에 뿌리기도 한다. 한편, 궁중에서는 관상감에서 만들어 올린 달력을 ‘동문지보(同文之寶)‘란 어새(御璽)를 찍어서 모든 관원들에게 나누어주는데, 이 달력은 황장력(黃粧曆)․청장력․백력 등의 구분이 있었고, 관원들은 이를 다시 친지들에게 나누어주었다. 이러한 풍속은 여름에 부채를 주고받는 풍속과 아울러 ‘하선동력(夏扇冬曆)‘이라 하였다. 또한, 내의원(內醫院)에서는 전약(煎藥)이라 하여 쇠가죽을 진하게 고아 관계(官桂)․생강․정향(丁香)․후추․꿀 등을 섞어 기름에 엉기게 하여 굳힌 후 임금에게 진상하여 별미로 들게 하였다. 그 밖에 고려․조선 초기의 동짓날에는 어려운 백성들이 모든 빚을 청산하고 새로운 기분으로 하루를 즐기는 풍습이 있었다.
대 사람들은 이 날을 태양이 죽음으로부터 되살아나는 날이라 생각하고 태양신에게 제사를 올렸다고 한다. 동짓날을 '작은 설'이라 하고 "동지 팥죽을 먹어야 진짜 나이를 한 살 더 먹는다."는 속담이 있을 정도이다.
○ 소한(小寒)
동지 후, 대한(大寒) 전의 절기이다. 양력으로는 1월 5일경에서 20일경이며, 음력으로는 12월절(十二月節)이다. 태양은 1월 5일경 황경 약 285°에 위치한다. 절후의 이름으로 보아 대한 때가 가장 추운 것 같으나 실은 소한 때가 한국에서는 1년 중 가장 춥다. 옛사람들은 소한 15일간을 5일씩 3후(候)로 세분하여, ① 기러기가 북(北)으로 돌아가고, ② 까치가 집을 짓기 시작하고, ③ 꿩이 운다고 하였다.
이름으로 보면 '큰 추위'라는 뜻의 대한 때가 더 추운 것 같지만 우리 나라에서는 소한 때가 가장 추워서 "대한이 소한 집에 놀러 갔다가 얼어 죽었다."는 속담이 있을 정도이다.
○ 대한(大寒)
소한(小寒) 15일 후부터 입춘(立春) 전까지의 절기로, 양력으로는 1월 20일경부터 시작된다. 음력으로는 12월 중기(中氣)이다. 태양의 황경은 약 300°가 된다. 대한은 그 말뜻으로 보면, 가장 추운 때를 의미하지만, 한국에서는 1년 중 가장 추운 시기가 1월 15일경이므로 사정이 다소 다르다. 따라서 “대한이 소한 집에 놀러갔다 얼어죽었다”거나 “소한 얼음, 대한에 녹는다”는 이야기가 생겼다. 한국을 비롯한 동양에서는 겨울을 매듭짓는 절후로 보아, 대한의 마지막 날을 절분(節分)이라 하여 계절적으로 연말일(年末日)로 여겼다. 풍속에서는 이 날 밤을 해넘이라 하여, 콩을 방이나 마루에 뿌려 악귀를 쫓고 새해를 맞는 풍습이 있다. 절분 다음날은 정월절(正月節)인 입춘의 시작일로, 이 날은 절월력(節月曆)의 연초가 된다.
중국에서는 겨울 추위는 입동에서 시작해서 소한으로 갈수록 추워지고 대한에 이르러서는 최고에 이른다고 한다. 그러나 우리 나라에서는 소한 때가 더 추워서 "춥지 않은 소한 없고 포근하지 않은 대한 없다.", "소한의 얼음 대한에 녹는다."는 속담도 있다.
□ 전통명절
○ 설날
새로운 해가 시작되는 첫날 음력 1월 1일은 설날이이다. 설날 아침 일찍 일어나서 새해 아침에 입는 새 옷인 "설빔"을 입고 돌아가신 조상들에게 절을 드리는 "차례"를 지낸다. 그런 다음 나이가 많은 어른들로부터 새해 인사인 "세배"를 하지요. 세배를 할 때에는 새해 첫날을 맞아서 서로의 행복을 빌고 축복해 주는 "덕담"을 주고 받는다. 세배가 끝나면 차례를 지낸 떡국으로 아침을 먹는다. 이렇듯 새해 첫날인 설날은 하루 종일 복을 빌고 좋은 말을 많이 하고 들으면 일 년 내내 그러하고, 좋은 음식을 배부르게 먹으면 일년 내내 배부르다고 한다.
○ 정월 대보름
음력 1월 15일인 정월 대보름 아침에 일찍 일어나 땅콩이나 호두를 깨무는 것을 "부럼 깐다"라고 한다. 부럼은 딱딱한 껍질로 된 과일을 말한다. 호두나 잣, 땅콩 같은 것들이다. 또 "부스럼"의 준말로 피부에 생기는 종기를 가리키는 말이기도 하다. 요즘은 먹을 것도 다양하고 좋은 음식도 많아 부스럼이 나지 않지만 옛날에는 영양 상태가 좋지 않다 보니 피부에 버짐이 피기도 했다. 그런데 땅콩이나 호두 같은 열매에는 그런 부스럼을 막아주는 영양소가 쌀보다 수십 배나 많이 들어있어 아이들에게 이것을 미리 먹여 일 년 동안 피부병에 걸리지 않게 하려고 했으니 정말 지혜로운 조상님들이시다. 옛날 우리 조상들은 달이 밝은 밤을 신비롭게 여겼다. 특히 보름날 밤에는 둥근 달을 보며 더욱 흥겨워했다. 그래서 일 년 중에서도 첫 번째 찾아오는 정월 보름은 더욱 소중히 여겨서 "대보름" 이라고 부르게 된 것이다. 정월 대보름날 뜨는 보름달을 보며 한 해의 소원을 빌며 그 소원이 이루어진다고 했다. 그래서 농부들은 풍년이 들기를 빌곤 했지요.
○ 한식
중국 춘추 시대 문공이라는 왕자가 있었다. 임금이 죽고 왕실이 어지러워지자 문공은 멀리 다른 나라를 떠돌게 되었다. 문공에게는 여러 명의 신하가 있었는데 그 중 개자추라는 무척 충성스러운 신하가 있었다. 그는 문공이 먹을 것이 없어 며칠을 굶어 쓰러지자 자기의 넓적다리 살을 잘라 구워 먹일 정도로 문공에게 충성스러운 신하였다. 훗날 문공은 진나라의 임금이 되었다. 문공은 그를 도와 주었던 개자추를 그만 까맣게 잊고 말았다. 훗날 문공은 자기의 잘못을 깨닫고 신하로 하여금 개자추를 불러오게 하였지만 개자추는 산에서 내려오질 않자, 신하들과 궁리 끝에 산에다 불을 질러 산에서 내려오게 하였으나 개자추는 그의 어머니와 내려오지 않고 끝내 불에 타 죽고 말았다. 문공은 너무 마음이 아파 개자추의 충성심을 위로하고자 해마다 오늘이면 하루동안 불을 지피지 말도록 하였다. 그 날 이후로 한식날에는 불에 타 죽은 개자추의 넋을 위로 하고자 불을 지피지 않고 찬밥을 먹는다고 한다. 한식은 동지가 지나고 1백 5일째가 되는 날이다. 이 때는 농촌이 한창 씨를 뿌릴 때이기 때문에 특별한 놀이를 하지 않고 조상의 묘를 찾아 차례를 지내고 성묘를 하면서 조용히 하루를 보낸다. 한식날은 양력으로 보면 4월 5,6일쯤이 된다. 식목일과 비슷한 때이디. 이 때가 일 년 중 나무를 심거나 씨를 뿌리기에 가장 알맞아 농가에서는 일년 농사의 처음으로 생각했다. 한식날 무렵은 비가 많이 내리지 않은 건조기이다. 이렇듯 한식은 건조한 날씨에 잘 맞는 명절이다.
○ 단 오
음력 5월 5일이다. 우리 조상들은 홀수가 두 번 겹치는 날은 생기가 넘친다고 해서 길한 날이라고 생각했다. 단오는 다른 말로 "술의날"또는 "수릿날"이라고도 해요. "술의"나 "수리"는 우리말로 수레를 가리키는 말이다. 농사짓던 농민들에게 수레는 무척 중요한 기구여서 단옷날 먹는 떡도 수레 모양으로 만들었다. 단오에는 여자 남자 할 것 없이 여러 가지 놀이를 했는데 여자들은 그네뛰기를 남자들은 씨름을 하면서 하루를 보냈다. 거의 바깥에 나가 돌아다닐 수가 없었지만 단옷날만큼은 옷을 곱게 차려 입고 하루 종일 친구들과 어울려 놀 수 있었다. 단오는 제사의 뜻을 가지는 명절이기도 해서 새로 시작한 농사가 잘 되기를 기원하는 날이었던 것이다. 또 이때부터는 비가 자주 오는 계절로 접어들기 때문에 나쁜 병이 번지기 쉬워 여러 가지 풍습이 생겨났다. 단옷날 남녀 모두 창포 삶은 물에 머리를 감아 나쁜 귀신과 질병을 쫓을 수 있다고 믿었다. 단오는 음력5월이니 슬슬 무더위가 시작되는 무렵이다. 사람들은 부채를 서로 선물하면서 올해도 더위를 타지 말고 건강하라는 소망도 함께 선물했다. 또 "대추나무 시집 보내기"해서 단옷날 정오에 대추나무 가지를 치거나 가지 사이에 돌을 끼워 놓아 더 많은 열매가 열리기를 기원하는 풍습도 있었다.
○ 유 두
음력 6월 15일을 "유두"라고 한다. 한창 더운 계절에 들어 있는 명절로 음력 6월은 "썩은달"이라고 했는데 비도 자주 오고 더위가 가장 심해 음식도 금방 변해 썩은 달이라고 한 것이다. 농사일로 눈코 뜰새 없이 바쁜 백성들이 모처럼 몸을 씻고 머리를 감을 수 있는 시간이 된 명절이 바로 유두날이다. 보통 때에는 여자들이 밖에서 옷을 벗고 몸을 씻는다는 것은 생각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유두날만큼은 얼마든지 씻을 수가 있었지요. 유두는 "수두"라고도 했는데 수두는 "물맞이"이라는 말이 되었는데 유두가 몸을 씻는 날이니 서로 뜻이 맞다고 할 수 있겠다. 유두에는 우선 새로 나온 오이나 참외 같은 과일을 따고 국수를 만들어서 사당에 제사를 드렸다. 그 동안 농사를 잘 보살펴 준 조상이나 신에게 감사를 드리는 것이다. 유두날엔 찰떡이나 밀떡을 해 논이나 밭에 가서 한 덩이씩 놓고 농사가 잘 되기를 빌기도 했다. 이것으로 옛 어른들이 얼마나 농사를 중요하게 여기며 살아갔는지 잘 알게 해 주는 풍습이다. 유두날에 밀가루로 만든 국수를 먹으면 더위를 타지 않고 건강하게 여름을 날수 있다고 생각했다. 또 밀가루를 구슬 모양으로 만들어 오색 물감으로 알록달록 색을 입혀 예쁜 색실에 꿰어 차고 다니면 나쁜 액을 막을 수가 있었다고 한다.
○ 칠월 칠석
먼 옛날 옥황 상제에게는 직녀라는 예쁜 딸이 하나 있었다. 직녀는 하루 종일 베 짜는 일만 하며 살고 있었다. 직녀가 짠 옷감은 정말 눈부실 만큼 아름다웠다. 어느 날 직녀는 베 짜는 일을 잠시 중단하고 창밖을 내려다보다가 무심코 은하수 건너편의 청년을 보고 첫 눈에 반해 곧 옥황 상제에게 달려가 그 청년과 결혼을 허락해달라고 하자 "허허 .견우 말이로구나." 하면서 옥황 상제는 견우가 아주 마음에 들었던 터라 곧 혼인을 시켜 주었다. 결혼후 두 사람은 너무 사랑해 잠시도 떨어져 있으려 하지 않아 둘 다 해야 할 일을 제대로 할 수가 없었다. 베를 짜지 않아 하늘 나라 사람들은 옷이 부족해지고 견우의 소와 양들은 병에 걸려 앓고 농작물들도 말라 죽어 하늘 나라가 혼란스러워지자 땅의 세상도 어지러워졌다. 옥황 상제는 몹시 화가나 "이제부터 직녀는 은하수 서쪽에서 베를 짜고 견우는 은하수 동쪽에서 살도록 해라!"라고 명령을 내렸다. 견우와 직녀는 용서를 빌었지만 옥황상제는 마음을 움직이지 않고 대시 일년에 딱 한번 음력 칠월 칠일 한 번 만날 수 있게 해주었는데 이것이 바로 칠석날이다. 그러나 견우와 직녀가 일 년을 기다려 만나기 위해 나왔을 때에는 은하수가 두 사람 사이를 가로막고 있었다. 두 사람이 슬프게 우는 모습을 본 까마귀와 까치들은 너무 불쌍해 곧 서로의 몸을 이어 다리를 만들어 두 사람을 만날 수 있게 해 주었는데 그 다리를 "까마귀 오(烏),"까치 작(鵲)자를 써서 오작교라고 해요. 칠월 칠석날에는 주로 비가 오거나 흐린 경우가 많다. 그것은 견우와 직녀가 만나서 기쁨의 눈물을 흘리기 때문이라고 한다. 칠월 칠석 무렵은 바쁜 농사일이 어느 정도 끝나고 더위도 한풀 꺾이는 때라 여름 내내 입었던 옷을 빨아 햇볕에 말리는 등 칠석날 옷과 책을 말리면 일 년 내내 좀을 먹거나 상하는 일이 없다고 한다. 이 밖에도 칠석날은 가진 고추 등 햇것을 맛보는 날이었다.
○ 추석
강강수월래는 추석날 밤 처녀들이 떼를 지어 춤을 추면서 노는 놀이지요. 강강수월래는 원래 임진왜란 때에 이순신 장군이 왜적에 비해 우리 병사의 숫자가 적자 머리를 써서 산에 불을 붙여 놓고 마을 여자들을 빙빙 돌게 하면 왜적들이 우리 병사들로 착각하게끔 해서 정말로 왜군을 철수하게끔 하였다. 그 후로 마을 사람들은 이 날의 기쁨을 기념하기 위해 춥지도 않고 덥지도 않은 달밤을 택해 "강강수월래"를 부르며 뛰어 놀게 된 것이다. 음력 팔월 한가윗날은 날도 좋고 달도 밝아 강강수월래를 하기에는 가장 좋은 날이었다. 추석은 아주 오래 전부터 조상 대대로 지켜 온 우리의 큰 명절로 일 년 동안 기른 곡식을 거둬들인 햇곡식과 햇과일로 조상들에게 차례를 지내고 ,이웃들과 서로 나눠 먹으며 즐겁게 하루를 지냈다. 아무리 가난한 사람도 떡을 빚어 나눠 먹었다고 해서 속담 중에"일 년 열두달 3백 65일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말도 생겼다. 음력 8월 15일 추석을 다른 말로 한가위라고도 부르는데 "한"이라는 말은 "크다"라는 뜻이고 "가위"라는 말은 "가운데"라는 뜻을 가진 옛말로 즉 8월 15일인 한가위는 8월의 한가운데에 있는 큰 날이라는 뜻이다. "가위"라는 말은 신라 때 길쌈 놀이인 "가배"에서 유래한 것으로 "길쌈"이란 실을 짜는 일을 말한다. 신라 유리왕때 한가위 한달 전에 베 짜는 여자들이 궁궐에 모여 두 편으로 나누어 한 달 동안 베를 짜서 한달 뒤인 한가윗날 그 동안 베를 짠 양을 가지고 진 편이 이긴 편에게 잔치와 춤으로 갚은 것에서 "가배" 라는 말이 나왔는데 후에 "가위"라는 말로 변했다. 추석날에는 강강수월래, 씨름대회, 활쏘기 대회, 농악. 거북 놀이 등 많은 놀이를 했지요. 새로 나온 과일과 곡식으로 차례상을 차려 드려 한 해에 거둬들인 것을 보고들이고 아침을 먹은 후 조상의 산소에 성묘를 하러갔다. 우리의 명절인 추석은 즐겁고 신나는 날인 동시에 그런 즐거움을 얻은 것에 대한 감사를 잊지 않은 날이었다.
○ 중양절
음력 9월 9일은 중양절이다. 중양절은 다른 말로 "중구일 "이라고도 한다.. 옛 어른들은 홀수가 두 번 겹치면 복이 들어오는 좋은 날이라고 단오나 칠석날처럼 중양절을 명절로 삼았다. 중양절에는 높은 곳에 올라가 국화로 빚은 술을 마시며 즐겁게 놀거나 술친구를 찾아가 함께 놀거나 술을 선물하기도 했다. 옛날 중국 어느 마을에 신통한 능력을 가진 장방이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장방은 어느 날 환경이라는 사람을 찾아가 돌아오는 9월 9일 이 고을에 큰 재앙이 있을 것이니 식구들을 모두 데리고 주머니에 수유꽃을 넣었다가 팔에 걸고 산꼭대기에 올라가라고 이르자 환경은 9월 9일 그렇게 하였다. 산에 올라가 국화주를 마시며 하루를 보내고 장방의 말대로 해가 떨어진 후에 내려와 보니 가축들이 한 마리도 남김없이 죽어 있었다. 그 후부터 중양절이 되면 산에 올라가는 풍습을 지키게되었고 또한 국화주를 마시게 되었다. 중국 궁궐 안에서 가패란이란 궁녀가 9월 9일 국화로 떡을 만들어 먹었다. 중양절에는 국화주와 국화전 외에 화채도 만들어 먹었다. 가을이면 노랗게 익은 유자를 따다가 송송 썰어 꿀물에 타고 여기에 석류알과 잣을 동동 띄우면 맛있고 시원한 화채가 된다. 중양절에는 좋은 날 이지만 결혼식이나 잔치를 열지 않았다. 그건 바로 남이 즐길 수 있는 좋은 날에 자기집 잔치로 폐를 끼쳐서는 안 된다는 뜻이었다. 중양절은 추석처럼 큰 명절은 아니어서 특별한 놀이를 하지는 않고 대신 음식을 가지고 산과 들을 찾아가 하루를 즐겁게 놀았는데 요즘 말하자면 가을 소풍 같은 것이었다. 중양절이 되면 봄에 떠났던 기러기가 우리 나라를 찾아오고, 봄에 찾아 왔던 제비들은 강남으로 돌아가는 날인 것이다. 또 여름 내 극성이던 모기가 사라지고, 뱀이나 개구리도 겨울잠을 자기 위해 사라지고 중양절부터는 겨울을 날 수 있는 동물들만 남게 된다.
○ 동 지
중국 진나라에 공공이라는 사람에게 골칫덩어리아들이 하나 있었다. 아들 때문에 하루도 맘 편한 날이 없었는데, 어느 날 낮이 가장 짧고 밤이 가장 긴 날인 동짓날 공공의 말썽쟁이 아들이 그만 죽고 말았다. 그런데 죽은 아들이 그만 역질 귀신이 된 거예요. "역질"은 천연두라는 무서운 전염병으로 지금은 예방 주사를 맞으면 걸리지 않는 병이지만 그 당시에는 역질이 마을에 돌면 마을 사람들 대부분 꼼짝없이 앓다가 죽어 버리자 공공은 내 아들이었다 해도 그냥 둘 수가 없었다. 공공은 아들이 팥을 무서워했다는 기억을 떠올리고는 팥죽을 써서 대문간과 마당 구석구석에 뿌렸다. 역질 귀신이 된 아들이 공고의 집에 와서 그만 팥죽을 보고 달아나 버리고 말았다. 그 날 이후로 사람들은 역질 귀신을 물리치기 위해 동짓날이 되면 팥죽을 쑤었다. 팥은 곡식들 중에서도 유난히 붉은 색을 지닌 것이다. 옛날 사람들은 귀신은 밝은 것, 즉 붉은 것을 싫어하기 때문에 그런 색이 있을 때 달아나거나 나타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남자 아기를 낳은 집에 붉은 고추를 새끼줄에 꿰어 놓는 것도 그렇고 또 귀신들이 소녀를 좋아한다고 해서 소녀들은 봉숭아 꽃잎을 찧어 손톱에 빨갛게 물들이게 했다. 그런데 동지가 음력 11월 10일 이전에 들며 "애동지"라고 해서 팥죽을 쑤어 먹으면 아이들에게 나쁘다고 팥죽을 쑤어 먹지 않았다. 동짓날 팥죽을 먹지 않으면 귀신을 막지 못할 뿐만 아니라 쉽게 늙고 잔병이 많이 생겨 일 년 내내 몸이 불편해진다고 생각했다. 이런 풍습은 오늘날까지도 잘 지켜져 내려오고 있다.
○ 섣달 그믐
섣달 그믐날 궁궐에서는 열두 마리 동물가면을 쓴 사람들은 붉은 가면을 쓴 사람들이 주문을 외우며 징을 치면 도망을 치며 쫓겨나는 풍습이 있었는데 나쁜 귀신을 물리치기 위한 행사였다. 섣달 그믐날은 일 년의 마지막 날이자 새해를 맞기 하루 전날이기도 하지요. 새로운 마음으로 새해를 맞는 여러 가지 풍습들이 많이 있었는데 "묵은세배"는 그 동안 무사히 잘 보냈다는 것을 알리는 한 해의 마지막 세배를 드렸다. 인사로 시작해서 인사로 마무리하는 것만 보아도 우리 민족은 역시 예의를 잘 아는 민족이라는 것을 알 수 있어요. 또 섣달 그믐날 대청소를 해서 지난 해 동안 집에 들어와 있던 나쁜 귀신들과 재앙을 버리는 풍습도 있었다."부엌 귀신 맞이"는 부엌 귀신이 음력 12월 25일 이 되면 살고 있던 자리를 떠나 하늘 나라로 가서 자기가 사는 집에서 있었던 일을 하느님께 다 말씀 드린 후에 섣달 그믐날 밤 다시 자기 집으로 제대로 길을 잃지 않고 돌아오도록 사람들은 집 안 곳곳에 밤새도록 불을 환하게 켜 놓는 풍습이 있었다. "해지킴"이란 풍습은 잠을 자지 않고 묵은 해가 가는 것을 지키는 것으로 이렇게 하면 새해에 복을 얻을 수 있다고 믿었고 그냥 자면 다음날 아침에 눈썹이 새하얗게 변한다고 해서 잠자는 아이들에게 눈썹에 밀가루를 칠해 아침에 놀라게 해서 한바탕 신나게 웃기도 했다. 이렇게 섣달 그믐날은 다음 날인 새해 첫날을 맞이하기 위해 몸과 마음을 단정히 하는 날이었다. 집 안팎도 치우고 귀신도 쫓으면서 마음가짐을 새롭게 했다.
□ 명절음식
○ 떡 국
명절마다 먹는 음식을 "세시음식"이라고 하는데 떡국도 세시 음식 중의 하나이다. 설날 아침엔 차례상을 차릴 때 밥 대신 떡국을 올란다. 그러고 나서 아침을 떡국으로 먹는다. 떡국을 끊이려면 우선 가래떡을 만들어 굳으면 동전 모양으로 납작납작하게 썰어 넣고 국을 끊이면 떡국이 된다. 가래떡은 가늘고 기다랗게 만든 흰떡을 말하는 것으로 새해 첫날 아침에 먹는 떡국은 병 없이 오래 살라는 의미도 담겨 있다고 한다.
○ 오곡밥과 나물
정월 대보름날은 오곡밥과 여러 가지 나물을 먹는 날이다. 오곡밥은 찹쌀, 찰수수, 팥, 차조, 콩 등 다섯 가지 종류의 곡식을 섞어 만든 밥이에요. 반찬으로는 묵은 나물을 삶아 먹었다. 가을이 되면 어머니들은 호박이나 가지, 시래기, 곰취 같은 나물들을 손질해서 겨울 동안 잘 말렸다가 대보름날이 되면 이 나물들을 삶아서 기름에 볶은 것이다. 대보름날 묵은 나물을 먹으면 일년 동안 더위를 먹지 않는다고 한다. 사실 대보름날은 묵은 나물로 반찬을 해먹는 풍습은 겨울 동안 없어진 입맛을 되살리기 위해 만들어진 풍습이다.
○ 된 장
된장은 우리의 전통 음식을 이야기할 때 빼 놓을 수 없는 음식으로 "팔진미의 주인"이라고 부를 정도로 음식 맛을 낼 때 가장 으뜸이 되는 뜻이다. 된장을 만들려면 우선 메주를 쑤어야 했다. 메주는 삶은 콩을 찧어 동그랗게 혹은 네모나게 빚어 짚 광주리에 넣고 따뜻한 아랫목에서 띄워서 만들었다. 메주는 늦가을에 쑤어서 겨우내 띄워야 제 맛이 난다. 이 메주를 가지고 간장을 만드는데 간장으로 다 우려 낸 메주를 잘게 부수어서 소금이랑 버무려 만드는 것이 바로 된장으로 입춘 전, 아직 추위가 다 풀리지 않은 이른 봄에 담가야 장맛이 좋다고 한다. 또 된장 담는 독도 중요하게 여겨 장 담그기 일주일 전부터 하루에 두 번씩 맑은 물에 독을 씻어 냈다.
○ 식혜와 수정
식혜는 밥을 가지고 만드는 음식이다. 우선 밥을 만든 다음에 엿기름을 부어 따뜻하게 5-6시간 정도 삭히면 밥알이 동동 떠오르게 되는데 이 때 설탕을 넣고 보글보글 끊여 식혀서 잣을 동동 띄우면 맛있는 음료수가 된다. 수정과는 곶감을 달인 물에 생강과 꿀을 넣고 끊여서 식힌 후에 건져 둔 곶감과 잣을 넣어 만들었다.
○ 국 수
국수는 우리의 전통 음식으로 주로 밀가루로 만들어 먹지만 밀가루가 들어 오기 전에는 마, 칡, 녹두 같은 재료로도 국수를 만들어 먹었다. 중국과 일본은 반죽을 잡아 늘이는 방법으로 국수를 만들었지만 우리는 구멍 뚫린 바가지에 반죽한 것을 부어 구멍 사이로 부어 구멍 사이로 반죽들이 실처럼 뽑아져 나오면 이것을 물에 받아 굳힌 것이 우리식 국수다. 국수 만드는 법은 조선 시대 후기에 들어와서 밤으로 만든 밤국수, 백합뿌리로 만든 백합국수, 진달래 꽃가루를 녹말에 섞어서 만든 꽃 국수까지 종류가 많아졌다.
○ 김 치
우리 민족만의 음식이지만 요즘은 세계에 수출 할 만큼 인기 있는 음식으로 인정 받고 있다. 김치는 배추나 무 등을 소금에 절여 고춧가루와 젓갈을 넣어 만든 음식으로 고춧가루가 들어오기 전에는 후춧가루로 양념을 해 먹다가 지금으로부터 300백년 전 쯤에 고춧가루가 들어오면서 오늘날의 김치가 되었다. 김치에는 배추김치, 총각김치, 깍두기, 동치미 등 약 60여 가지나 되고 양념 또한 1 백여 가지나 된다. 김치에는 비타민C가 춘분하고 소화도 잘 되고 마늘은 암을 예방 해주고 젓갈에는 단백질도 가득 들어 정말 영양소도 풍부하고 과학적인 식품이다.
○ 떡
떡은 우리 민족이 농사를 짓던 시절부터 만들어진 것으로 쌀 농사를 짓기 시작한 때부터이니까 지금으로부터 약 3천 년 전부터 떡을 만들어 먹은 것이다. 명절날에 만들어 먹은 떡에는 시루떡, 수수 팥떡, 백설기, 인절미 등 그 수를 세기 힘들 정도이다. 송편은 추석날 만들어 먹은 떡으로 식구들이 모여 송편을 빚는 모습은 참 정겹다. "송편"을 한글로 바꾸면 "솔떡"이 되고 송편을 찔 때 솔잎을 깔고 찌기 때문에 생긴 이름이다.
○ 화 전
꽃을 넣고 지지는 전을 가리키는 말로 우선 깨끗한 꽃을 따서 꽃술을 떼어 찹쌀가루를 따뜻한 물로 반죽해서 밤톨 만큼씩 떼어 내어 동글 납작하게 만들어서 그 위에 꽃을 올려 지져내면 훌륭한 화전이 된다. 봄에 먹는 화전은 진달래전, 여름엔 노란 장미를 올린 화전, 가을인 중양절엔 국화전 그때 그때 계절마다 피는 꽃으로 화전을 만들어 먹을 줄 알았다.
○ 한과 (과자)
한과는 우리의 전통 과자로 음식 중에 가장 손이 많이 가고 정성 가득 들어가는 음식이다. 과자의 종류는 많지만 유과와 약과는 가장 대표적인 것이다. 유과는 잔치상이나 제사상에 빠지지 않는 과자다. 약과는 밀가루에다가 기름과 꿀, 또는 술을 넣고 반죽해서 튀긴 과자이다. 옛날 우리 음식에는 "약"자가 들어가는 음식이 많다. 옛 어른들은 꿀을 약이라고 생각했다. 우리 조상들은 과자를 만들 때 정성을 함께 넣어 빚어 서로 명절 선물로 보내기도 했다.
○ 신선로와 구절판
신선로와 구절판은 임금님과 같은 높은 분들의 상에 오르는 고급스러운 음식이었다. 신선로는 가운데 불구멍이 있는 그릇에다 채소, 고기 등을 돌려 담고 장국을 부어 끊이는 탕을 말해요. 갖가지 재료를 넣은 데다가 정성도 많이 들어가는 음식이라서"열구자탕"이라고 하는데 "입을 즐겁게 해주는 탕"이라는 뜻이다. 구절판은 아홉 칸으로 나누어진 그릇 이름이다. 그런데 나중에 그냥 음식 이름이 된 것이다. 구절판은 밀가루로 지진 얇은 떡에 여덟 가지 재료를 넣어 싸서 먹는 음식으로 쇠고기 볶은 것, 표고 버섯, 오이, 당근, 숙주, 석이 버섯, 달걀 흰자, 달걀 노른자를 여덟 칸에 돌려 담지요. 그리고 가운데 칸에다 밀가루 전을 담아요. 먹을 때는 겨자장이나 초장을 넣어 먹으면 더 맛있다.